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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May 30. 2020

아삭이들의 자라남에 감사합니다.

전 직장 선생님께서 내가 퇴직하고 쉬는 기간 동안 식물을 심어 보라고 했다. 모종 종류 구분없이 3가지를 키워보라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난 4월 초. 할머니 댁에서 상추 모종을 가져왔다. 3가지를 길러보라고 추천해주셨으니까 동네 모종파는 가게에 가서 오이고추와 방울토마토를 가져왔다. 집에 베란다가 없고, 텃밭이 있는 집이 아니라서 창가에 두고 키웠다. 며칠후 방울토마토는 우리집 창가에서 받는 햇빛으로는 잘 자라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종류를 바꿨다. 두레생협에서 사 둔 대파가 보이길래 댕강 잘라서 뿌리 채로 흙에 심어 버렸다. 이 세가지 식물들을 두고 나는 아삭이들이라고 불렀다.    

 

작은 식물도 내 손에만 오면 금새 생기를 잃어버린다. 푸르던 잎들이 이내 고개를 수그린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내가 가지는 관심 때문이였을까, 원래 잘 자라는 식물들이라서 그런걸까. 조금씩 자라남의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상추는 너무 많이 자라나 한번 식사에 오르게 되었다. 내가 키운 상추라는 기분에 정말 맛있게, 그리고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음식을 먹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내 모든 일상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소식이 생겼다. 오이고추가 드디어 고추가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모종을 살 때 이게 뭔 식물이였는지 심어 놓고 고개를 갸우뚱 했는데, 드디어 오이고추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너무 신기했다. 파도 무럭무럭 자라났고, 상추는 타이밍을 못 맞춰서 웃자라 버렸다.   

 

내가 무언가 키우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물만 줬는데 자라나는 녀석들도 기특하고,

살아가고, 자라나고 있는 생명체에 감사하고,

정말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기쁨이 내게 찾아왔다. 정말 감동이다. 그제서야 전 직장 선생님께서 식물을 키워보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오이 고추가 실하게 열리면 따서 드려야겠다. 고작 오이고추, 상추 한 장이지만 내 정성으로 키워낸 것들이니까. 그 정성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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