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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Jun 26. 2020

니 그림에서 너의 가난이 보여

책을 쓰며, 본인이 쓴 책에 그림까지 넣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내가 못하는 부분이기에. 언젠가는 나도 내 글에 삽화를 넣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그림은 다른 분에게 부탁하려고 한다. 난 내 책에 넣을 삽화도 그리지 못하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왜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을까?    


그림은 학교 다닐 때 애들이 학원에서 이미 배워오는 부분이였다. 피아노도 이미 학원에서 배워와서 학교 정규수업을 들으면 빠르게 진도를 따라가고 그들만이 알고 넘어가는 세상이 있었다. 그러나 난 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고, 학원 보내줄 형편도 안되서 그냥 그림과 음악은 나와 먼 이야기라고 터부시하고 말았다. 중, 고등학교 미술시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수행평가가 있어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런 그림들을 보면 선생님들은 내 그림 보고 초등 수준이라고 했다. 또한 그림에 결핍이 드러난다고 했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그림에 치료를 대입했을까, 미술치료사라도 된 양, 내 결핍된 마음을 눈치챈 양. 너는 집이 어렵구나? 너는 우울한 아이구나? 구름을 이렇게 그리면 이러쿵 저러쿵, 창문을 그렇게 그리면 또 이러쿵, 저러쿵, 말들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림은 수행평가와 관련된 것 이외에 대학생때부터 한번도 그려본 적 없다. 음악도 계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학생이였다. 노래는 잘해서 합창부, 중창부, 독창을 해서 대회 나가서 상을 받았지만, 난 피아노 음을 듣고 노래를 부를 뿐, 계이름을 볼 줄 몰랐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중창부 활동을 했지만, 음표를 볼 줄 몰랐다. 그냥 옆에서 하는 나는 소리를 따라했고, 피아노 소리에 음을 맞췄다. 그래서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었다. 난 그림과 음악 앞에서 내 가난과 어린시절 배우지 못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 배우지 못한 부분을 취미생활로 하면서 하나씩 다시 익혀나가보자,라는 유연함이 생겼지만 20대에도 나는 확고하게 그림과 음악을 부정했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면서 그림을 위해 붓을 들어본 적도 없고, 노래를 잘 부르고 음악을 좋아하지만 직접 연주하는 것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쓴 글에, 그림을 넣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또 누군가는 내 그림을 보며 아프다고 하려나? 다시 생각해보면 난 요즘 인생이 행복하다. 그 행복도 그림에서 드러나지 않을까. 종이에 펜을 갖고 하는 것은 글쓰기 뿐이였는데, 그림 그리기도 할 수 있다는 것. 나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한 방법을 다시 찾았고 꺼내어 보고 싶다는 것. 그게 전부다. 뭐라도 한번 끄적거리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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