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0일(월)-퇴사 후 20일
오늘은 산책 후 자주 가는 카페에 갔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동행하는 카페가 다르다. 오랜만에 손님이 온 경우라면 동네 경치가 예쁜 1인 7천원에 달하는 커피집.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갈 경우에는 가격 대비 양이 많은 메O 커피, 카페가서 시간 보내지 않고 맛있는 커피만 사먹으려면 빤O, 그리고 혼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오는 이 곳. 동네가 두물머리 관광지다 보니 오는 손님은 주로 관광객이다. 아니면 이 근처에서 땅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식사를 하고 잠시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간다.
늘 좋아하는 자리에서 다리를 꼬고 책을 읽고 있었다. 두 명의 중년 남성이 시간차별로 들어왔다. 주문도 직접 카운터에 가는 게 아니라 내 뒷 테이블에 앉아서 “여기 따뜻한 라떼 주세요”라고 했다. 원래 카페는 선불인데, 일단 마시고 나갈 때 금액을 지불하려는 심산이다.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신경쓰일까. 나가기 전까지 집중해서 손님들을 봐야 하는데... 일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잠깐 내가 죄송스러워졌다.
두 명의 남자는 한숨 릴레이, 시발, 시발을 핑퐁처럼 주고 받았다. 대충 인력, 월급, 사업을 시작하면 득과 실, 계약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뭐 그런 내용이였다. 직장인들만이 할 수 있는 대화들이다. 오랜만에 나도 같은 자리에 앉아 동업자라도 된 냥 그분들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한숨이 나직하게 내쉬었다.
인생은 동화가 아니다. 뒤에 앉은 분들의 이야기에서 내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별일 없이 사는 것에 대해서 위대함을 느낀다. 아버지는 항상 일을 마치고 내게 전화를 하신다. 그때마다 오늘도 별일 없다고 하셨다. 그 별일없이 지내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지 잘 알고 있다.
매일 보는 풍경도. 시간과 시선, 계절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내 기준의 아름다움은 남들과 다르고 내가 가진 공황장애도 각기 사람들이 보기 나름이다. 나는 나대로 백수놀이를 만족하지만 가족들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듯도 하다.
30대 초반에 직장을 다닐 때 먼저 결혼한 동료가 나에게 말했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야.”
언제까지 동화 속 공주처럼 살거냐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했다. 꼭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야만 현실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각자의 무게가 다른데 그렇게 말하는 너는 내 인생을 가벼이 보는 거 아니냐고 화를 낼 수 없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세계니까. 각자의 입장이 있기에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갔던 일이 생각난다.
“믿지마라. 눈으로 보기전에 서류는”
뒤에 앉은 분 한 명이 그런 말을 했다. 나도 그 말에 덧붙여 말하고 싶었다. ‘속단하지마라. 상대방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나는 나의 속도로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계속 책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