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나~ 신이 나~ 엣헴! 백수! 신이 나~

by 양수리 감성돈

2020년 1월 19일(일)-퇴사 후 19일


전 직장 다니던 센터 여자 친구들과 오늘은 조촐한 파티를 하기로 한 날이다. 중2, 중3, 대학교 2학년 친구와 36살 백수가 만나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며칠전부터 나 혼자 들뜬 기분이였다. 맛있는 것도 시켜먹고, 친구들도 오랜만에 만나고, 시끌벅적한 하루를 보낼 생각으로 기분이 설레였다.


기상 시간은 혼자 사는 우리집에 초인종 소리로 시작했다. 약속 시간은 오후 2시. 모이기로 한 시간보다 중2 친구가 일찍 집으로 왔다. 그리고 미리 사둔 파티용품을 방에 꾸미기 시작했다. 풍선도 불고, 가랜드도 오리고 붙이고, 반짝이도 달고... 준비를 서둘렀다. 조금 후에 중3 친구와 대학교 2학년 친구가 왔다. 미리 모아둔 치킨 메뉴 종이들을 살펴보았다. 치킨 2마리, 피자 1판, 스파게티 2개, 다양한 다과 종류를 사두고 우리끼리 조촐한 파티를 시작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치킨을 먹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기쁘지는 않았다. 치킨은 뜯어 먹어야 제맛인데 우리 친구들은 순살을 주문했다. 그리고 2마리 중에 양념치킨은 맛이 없었다. 별로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남은 거 집에 두었다가 혼자 먹으면 된다는 기쁨이 있는 반면, 맛없는 치킨을 먹을 생각하니까 내가 음식물 쓰레기통이 된 기분도 들었다. 아... 역시 먹던 메뉴 먹어야지, 신메뉴를 시키는 게 아니였다.

식사를 하고 늘어진 배를 붙잡으며 멘탈도 늘어지기 전에 서둘러 밖으로 나와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에 가서 1시간 30분 정도 노래를 불렀다. 나의 선곡은 같이 간 연령에 따라 조금 다르다. 오늘 같이 간 친구들은 어린 층에 속하다보니 최신곡, 인기곡 중에 아는 곡을 불렀다. 목이 쉬어갈 때쯤 노래방 시간은 끝났고, 목이 따끔따끔 갈증도 나서 동네 카페에 갔다. 음료는 테이크 아웃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포토타임을 가졌다. 미리 구입해둔 캔들에 불을 켜고 찰칵! 미리 꾸며둔 황금 반짝이들 옆에서 찰칵! 형광 안경을 끼고 찰칵! 그렇게 사진을 찍다가 방바닥이 따뜻해서 다같이 누워버렸다.


내일이면 중2 친구는 메이크업 학원에 가서 3시간 수업을 받고, 중3 친구는 센터에 가서 4시간 시간을 보내고, 대학교 2학년 친구는 알바를 가서 8시간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논다. 가장 나이 많이 먹은 사람이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약간 창피함...이 있을 뻔 했지만 극복! 백수라도 이렇게 규칙적으로 잘 놀고 잘 쉬고 무언가 꾸물꾸물 하는 걸 보여주는 것도 우리 친구들에게 악영향은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영향력까지는 모르겠다.


오후 9시 30분쯤 되었을 때 친구들은 짐을 싸서 돌아갔다. 금방까지만 해도 시끌시끌 북적북적 거리던 집에서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니 꽤 쓸쓸해졌다. 오늘 눈을 뜬 순간부터 지금까지 신이나~ 신이나~ 엣헴 엣헴 신이나~ 신나고 즐거웠다. 비록 카드를 많이 써서 조금 허리 졸라매고 살아야하지만, 이런 시간들이 있기에 백수 삶에 활력이 되지 않나 싶다.


직장은 그만둔 건 어쩔 수 없지만, 너희들을 알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 영원을 약속하기에는 많은 걸 알아버린 어른이 되어서. 시간이 될 때 까지 너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오늘 하루 내가 돈을 얼마를 썼고, 내 시간을 얼마를 소비했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희들로 인해 즐거웠고, 서로 안부를 물어봐서 반가웠어. 또 만나자.


친구들을 배웅해주고 집에 들어왔다. 한참 TV를 보다가 전자레인지를 보니 옆에 빨간 지갑이 놓여져 있다. 우리 친구들 중에 한 명이 놓고 간 것이다. ‘짜식들, 내가 또 보고 싶어서 놓고 갔구나’ 내일 찾으러 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너희들의 흔적들이 날 신나게 만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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