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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Feb 03. 2021

펭수의 눈동자에 건배 <아무튼, 술>

공황장애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술을 끊은 지 5~6년 정도. 술도 그립고, 술과 함께한 안주들도 그립고, 술자리를 함께했던 사람들과 이야기도 그립다. 언젠가는 나도 공황장애가 많이 나아져서 술을 기울일 수 있겠지... 술을 처음부터 마셔본 적 없다면 모를까, 이미 맛을 알기에, 현재 술을 못 마시는 내 입장에서도 엄청난 몰입을 하며 책을 읽었다.     

“오, 나 이 기분 알아!” “오~ 그 술과 그 안주의 조합 진짜 환상적이지~” 

이렇게 혼자 맞장구치며 책을 읽었다. 희한하게 공부하거나, 글을 쓰려고 할때는 밤샘작업과 새벽에 깨어있는 게 쉽지 않은데 술만 마시면 시간이 없다. 밤이 짧다. 빨리 해가 뜬다. 희한하네.     

이 책은 술술 읽힌다. 목차를 읽으면 아, 이런 주제는 어떤 글을 썼겠구나, 짐작이 가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마음을 깬다. 공감은 잡고, 뻔함은 깼다. 아무튼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데, 이렇게 재미있다면 다음 책들도 보고 싶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술과 관련된 안주를 설명하는부분을 보고, 이 작가님 맛집이나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쓰더라도, 이미 그런 책들이 많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뻔하지 않은 재미를 주겠구나. 이런 마음이 들었다. 첫 번째 책에서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처럼 말이다.     


엄청 황홀하게 읽었던 문장을 쓰고자 한다. 난 이런 표현 처음이다. 오, 경이롭다. 

“엷은 취기가 몸 전체에 번지는 동안 하늘과 바다 위로 밤이 찾아왔다. 바다는 검은 유악을 바른 도기처럼 빛났고, 하늘은 누군가 허공으로 내던진 목걸이가 구름에 부딪히며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진 보석 알 같은 별들로 빛났다. 좀처럼 떨어져 내릴 것 같지 않은 단단한 별들을 보면서 홀짝 홀짝 모속으로 별 몇 모금을 더 떨어뜨려 넣고는, 뜨거워진 몸과 마음으로 여기저기 머무를 수 있는 곳마다 잠깐씩 멈춰 서서 춤을 추며 방으로 돌아왔다.”   

 

책을 읽다보면 인류의 진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듯이 결국엔 술에 취해 네발이 되어 기어가는 장면도 나오지만, 춤을 추며 방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술이 주는 술력? 마술? 이다. 세상을 늘 확장하는 것 뿐만 아니라 축소하는 아름다움과 삶의 비법도 알려준다. 이 개념도 새로웠다. 이 작가님 글 진짜 유쾌함과 뼈때림을 한꺼번에 느끼게 한다. 김혼비 작가님의 세계로 빠져보자.  

   


감성돈의 시선, 밑줄 긋기


“새벽 서너시까지 신나서 술을 마시고는 울다시피 출근했다가 기다시피 퇴근해서 기절하는 우리의 많은 과거들과 미래들, 청춘과 눈물, 환희와 고통, 사랑과 규칙, 수많은 가급적의 이면들과...”    


“작은 통 속에서 살아가는 동료들이여,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다면 때로는 나의 세계를 좀 줄이는 것도 괜찮다. 축소해도 괜찮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계를 확장하라고, 기꺼이 모험에 몸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만 감당의 몫을 책임져주지는 않으니까. 감당의 깜냥은 각자 다르니까. 빚내서 하는 여행이 모두에게 다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    


“지나고 보면 상대도 나도 적정선 안에서 ‘나이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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