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수리 감성돈 May 28. 2021

86세 동생, 90세 언니의 국밥 한 그릇

86세 동생, 90세 언니의 국밥 한 그릇     


이번에 조금 무리를 해서 일정을 잡았다.

물론은 아버지께서 운전하고, 나는 동행하는 것이지만,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도 꽤나 있다.      


아버지께서 2박 3일 동안 휴가를 내고 

나는 단단히 동네 의원에 가서 장염약을 짓고, 공황 비상약을 챙기고, 

할머니께서 계신 충주로 출발했다.     

충주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은 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대전에 가기로 했다. 


37살 감성돈이 열 살 남짓때 한번 뵈었던 이모 할머니. 그러니까 90세 이모 할머니를 뵈러 갔다. 통장에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식사도 못하고, 정신도 오락가락, 치매 증상도 있고, 화장실에 X칠을 하고... 방문했던 사례관리사? 분이 할머니께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할머니, 아버지, 감성돈 같이 이모할머니를 뵙고, 요양원에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상황파악을 하기로 했다.      


이모할머니네 집에 방문하니 코에 찌를 듯 찌른내가 대단했다. 실내 방 안이라서 마스크를 벗어도 되지만 쉽게 마스크를 내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냉장고, 세탁기, TV, 선풍기, 에어컨 아무것도 없었다. 기계를 믿지 못하고, 누군가 말을 걸면 욕을 하고, 남이 먹을 것을 갖다주면 독을 탔다고 욕을 하며 버린다고 했다. 아버지도 몇 년 전 이모할머니를 뵈러 왔을 때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다드렸는데, 드시지 않고 욕하며 그 자리에서 버렸다고 한다. 헐... 바로 전날 은행에서 출금한 기록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사례관리 하는 X이 훔쳐갔다고, 옆집에서 집어갔다가 엄청나게 욕을 하시며 난리난리- 결국 굉장히 엉뚱한 곳에서 돈뭉치를 찾았다. 후... 충주에 와서 모신다고 해도 욕을 하고, 난리치고, 결국 이렇게까지 상황이 온거구나...      

아무쪼록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상황을 정리하고, 


나는 아버지께 차에 뭐 두고왔다고 함께 나가자고 한 뒤 동네를 한바퀴 걸었다. 할머니도 언니를 몇 년만에 만나서 얼마나 반갑겠냐며 두분이 함께 계신 시간을 보내게 해드렸다. 점심식사를 하자고 1시간을 설득? 권유? 강요? 협박?한 끝에 차타고 가는 것도 엉뚱한데 데려간다고 윽박지르셔서 동네에 보이는 국밥집을 갔다. 국밥집 가기 전에 동네에 어떤 어른이 내게 말했다. 저 할머니한테 뭐 먹으러 가자는 소리하지 말라고. 뭐 줘도 욕하고, 성질내는 분이라고. 동네가 다 아는구나... 나는 하얀 국물을 잘 못 먹어서 만두육개장, 그리고 아버지는 도가니탕 3그릇을 주문했다. 한참을 한숨을 쉬던 이모할머니는 한숟가락 국을 뜨셨다. 

”언니, 먹어!“


머리가 새하얀 86세 할머니. 할머니에게도 90세가 되신 언니가 있구나. 언니를 챙기며 숟가락을 쥐어주며 먹으라고 챙겨주는 할머니의 모습이 낯설었다. 두 분이 무슨 말만 하면 윽박지르고 싸우셔서 아버지와 내가 중간에서... 나는 어지러워서 공황 비상약을 먹었다. 식사 안 하신다고 했는데... 이모할머니는 도가니탕 국물을 드시고, 사장님한테 국물을 더 달라고 하시고, 또 한번 더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서비스로 주신 계란도 앞접시를 들고 후루룩 숟가락으로 입 안에 떠 넣으셨다. 도가니탕 고기는 안 드셨지만 밥 한 공기와 국물을 세 그릇 드셨다. 정신이 어떻든, 동네에서 어떻게 불리든, 성격이 얼마나 거시기하더라도... 식사하는 모습에 안심이 됐다. 어찌어찌 헤어지고 할머니를 다시 충주에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충주에서 바로 양수리로 떠났다. 그제서야 아버지랑 나는 속 얘기를 했다.      

이게 어제 있었던 일이고, 


이모할머니는 6월부터 매일 요양보호사가 온다고 했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와 주민센터에서 상황을 살펴본 후 

요양병원을 보낼 정도의 상황이 되면 할머니와 아버지께 연락드리는게 절차라고 했다.

그때 대전에 계신 이모할머니를 충주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지금 계셨던 집정리는 아버지와 내가 하기로 했다. 

머지않았다.     


국밥 한 그릇을 먹는 동안 이모할머니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나도... 

그저 숟가락을 들고 허기진 배, 마음을 꾸역꾸역 채워 넣었다.

아버지, 할머니, 감성돈은 국밥을 뜨기 전, 서비스로 나온 계란후라이를 먼저 먹었고,

이모할머니는 식사를 하시다가 계란후라이를 드셨다.

중간에 반찬은 셀프라서 깍두기와 김치를 한번 리필했고,

나를 빼고 세 분은 맛소금을 넣으셨다. 

아버지는 국그릇 바닥이 보일때까지 드셨고,

할머니는 고깃덩이는 질기다며 또 승질

이모할머니는 씹던 고깃덩이를 뱉어 놓으며 국물을 세 그릇 드셨다.

그냥 일상적인 어떤 순간이 내게는 소중한 순간으로.

그런 소소한 기억으로 한 그릇 인생 채워지기를. 


국밥 한 그릇이 나를 채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딸기랑 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