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4일-나로 살기 64일째
대학교 다닐때는 지방대를 다녀서 그 동네에서만 놀았다.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한 노력.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학원 입학하고 나서 내가 너무 좁은 세상에서만 갇혀 살았음을 알았다. 서울에서는 평일에도 작은 클럽에 가서 공연도 볼 수 있고, 날씨 좋은 어떤 날은 락페스티벌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도 알았다. 충주 친구 중에 나보다 서울에 먼저 와서 살게 된 친구가 처음 락페스티벌 이라는 곳을 데려갔다. 굉장히 시끄러운 곳이였다. 엄청나게 자유분방한 곳이였다. 그리고 다리가 아팠다. 올림픽공원, 한강공원 같은 넓은 곳에서 2,3개의 부스를 만들어 테마를 정하고 시간대별로 다른 가수들이 와서 공연을 한다. 처음에 갔을때는 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수들이 아니여서 서서 보려니 다리가 아팠다. 저기 뒤쪽에서 보면 돗자리 펴고 편히 앉아서 볼 수 있는데 왜 가까이 보기 위해 일어서서 오랜 시간 있어야 하는지 영문을 몰랐다.
친구가 한 밴드가 나올때마다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락 페스티벌이라서 시끄러운 소리만 날 줄 알았는데 감성 돋는 밴드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 양일간 열리는 페스티벌에 이틀 연속 출근하듯 가서 공연을 보며 먹거리를 즐겼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안 나올때는 뒤편의 맡아둔 돗자리로 가서 잠시 수다도 떨고 낮잠도 자는 풍경이 너무 좋았다. 난 결국 처음 날 데려간 친구보다 락 페스티벌을 더 자주 갔다. 홍대에서 열리는 클럽공연을 자주 보러 갔다. 단독 콘서트를 하면 거기도 따라가고 연말에는 새해 카운트다운 공연을 보러 갔다.
직장생활하며 주말만 기다렸다. 이번 주말에는 어느 밴드가 어디서 공연하니까 거기에 가야지, 하면서 신났었다. 점프하면서 노래를 따라부르고 나 혼자 춤사위를 벌이고 즐거웠다. 30대 초반까지는 페스티벌을 항상 가고는 했다. 여기서부터 조금 슬픈 구간. 공황장애가 시작되면서 조금 큰 소리를 못 듣고, 소공연장이 막힌 공간이라 숨이 차기 시작했다. 락 페스티벌을 하면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숨이 안 쉬어지고 식은 땀이 죽죽 났다. 결국엔 그렇게 좋아하던 페스티벌 참여를 이제는 못하게 되었다. 내게 즐거운 취미였는데, 그게 어려워지니 좌절감이 상당히 컸다. 좋아하는 밴드에 대해서도 관심이 덜해지고, 공연장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면 찾아보지 않았다.
지금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한다. 주말만 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방방대며 다녔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된 사람들은 내가 엄청난 집순이로 안다. 나는 정반대의 성격이였는데. 대신 미러볼을 샀다. 집에서 불을 끄고 혼자 틀어놓고 흔들어댄다. 공연장에서의 기쁨과 환희는 아니지만 난 나만의 희열을 느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