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캐슬, '유사 금수저'들의 욕망
유럽의 역사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과 지닌 가문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을 든다.
신성로마제국은 15세기 중반 이후 300년을 이 가문에 의해 지배를 받았고, 600년 동안 오스트리아 왕실의 주인 또한 합스부르크 가문이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왕실은 합스부르크와 연결되어 있었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부의 죽음을 부른 한 발의 총성으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전쟁에서의 패전과 함께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 역사에서 퇴장한다. 이들 가문이 유럽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 근대의 일이라니 그 역사가 얼마나 길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른 국가는 전쟁을 하게 만들어라. 그리고 오스트리아여, 그대는 결혼을 해라”라는 유명한 라틴어 경구가 있다. 이는 수백 년 동안 이루어진 합스부르크 가문의 성공적인 결혼 정책을 한마디로 압축해주고 있다. 또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가문 유지의 비결이다.
이들은 전쟁이나 영토의 합병 없이 결혼이라는 정책을 통해 유럽을 통합해나갔다.
심지어 합스부르크 왕가와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웠던 프랑스조차도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바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다.
그런데 권력의 속성이란 게 한번 잡으면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권력을 마약에 비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당시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였던 합스부르크가 사람들은 명문가의 혈통을 공고히 하겠다는 명목으로 근친혼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러한 근친혼은 예상 밖의 부작용을 낳았다. 바로 ‘합스부르크 립’이라는 유전병이다. 의학 용어로는 하악 전돌증, 일명 주걱턱을 말한다.
‘합스부르크 립’은 열성 유전병으로 유전인자가 양쪽에 모두 있어야만 자식에게 유전됐던 것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근친혼으로 이 유전병은 더욱 심해졌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 역시 전형적인 합스부르크 립을 가지고 있었고, 아들 펠리페 2세는 이보다 더 심한 부정교합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부정교합으로 인해 입을 다물지 못해 벌레를 먹어야 하는 상황까지 있었다고 한다.
씹을 수 없다보니 이들 가문의 후손들은 만성적 위장장애를 앓아야했다.
우리가 잘 아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에는 합스부르크 립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녀 역시 유전병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유전적인 결함을 가리기 위해 어디에 가든 화려한 문양의 부채는 필수품이었다. 왕비의 부채 사랑은 사교계에도 퍼져 귀족 부인들은 너도나도 부채 하나씩을 들고 다녔을 정도다.
‘합스부르크 립’처럼 자신들 만의 성을 쌓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의외의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들은 성을 쌓고 그곳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간다. 이를 위한 그들의 노력은 치밀하면서도 지속적이다. 자신들만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신들의 세계를 견고히 하기 위해 적과도 손을 잡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를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에서 찾을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18살에 아버지가 죽자 8살 아래의 동생 프롤레마이오스 13세와 근친혼을 한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근친혼에 비하면 이들은 더 적극적이었다. 당시 왕실의 근친혼은 왕실의 피가 다른 피와 섞이지 못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법으로 규정돼 있었다.
어린 동생과 결혼해 막강한 권력을 잡은 클레오파트라.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남편이자 동생이 성인이 되고 권력의 중심에 서려고 할 때 클레오파트라는 위기감을 느낀다. 자신이 세운 권력의 성이 함락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이 향한 곳은 로마였다. 로마 권력의 정점에 있던 카이사르가 그의 권력을 유지시켜줄 구세주가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클레오파트라는 성과 권력을 얻을 수 있고, 바람둥이 카이사르는 매력 넘치는 여인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계획은 결국 성공했다. 이집트는 클레오파트라의 왕국으로 남게 되었고, 카이사르는 그녀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그런데 카이사르가 죽자 다시 그녀의 지위는 불안정해졌다. 로마는 카이사르가 후계자로 지명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의 갈등으로 내전 상태에 돌입해 그녀를 돌아볼 수 없었다. 그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안토니우스를 새로운 자신의 왕국의 보호자로 삼은 것이다. 그녀는 다시 카이사르에게 놓았던 유혹의 덫을 안토니우스에게 놓는다.
그녀의 덫은 다시 위력을 발휘한다. 안토니우스는 그녀와 왕국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섰고, 그녀는 옥타비아누스와의 대결에 쓰일 비용을 댄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기대와 달리 옥타비아누스와의 결전에서 패하고 만다.
그녀에게 이젠 치욕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결국 독사에 물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뿐이었다.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려는 견고한 성을 쌓기 위해 합스부르크 왕가는 결혼 정책을 이용했고. 클레오파트라는 성을 이용했다.
그들이 쌓아온 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때론 외부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적당한 견제와 동맹을 통해 서로의 기득권을 유지시켜 주면서 자신들만의 리그를 유지해나간다.
이 비극적 코미디는 무분별하고 때론 무모하게 보이는 최상류층의 권모술수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위해 성을 쌓고 그 안에 거주하며 배타적으로 살아간다. 여기에 등장하는 네 가족은 상류층에 진입하려다 몰락한 다른 가족들의 처절한 잔해를 밟고 올라서는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결혼정책을 이용하고, 클레오파트라가 성적 외교를 이용한 것처럼 이들이 자신들의 캐슬을 지키고 캐슬을 키워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것은 교육이다.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더 큰 부와 권력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진리에 대한 추구는 그 과정이나 윤리와 전혀 관계가 없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모든 것인 사회가 되어 버렸으며, 학부모든 학생이든 사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발견하는 것이나 그들을 둘러싼 부정의에 맞서는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SKY 캐슬"에서 "SKY"는 한국의 최상위 대학인 서울대(Seoul National University), 고려대(Korea University), 연세대(Yonsei University) 두음을 딴 단어이다.
이 세 대학은 일제 치하 때부터 한국의 상류 가문을 위한 텃밭이었다.
이 때문에 대학으로 진입하는 관문은 조심스럽게 보호되어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학시험은 값비싼 가정교사들과 함께 하는 전문적인 반복 훈련을 통해서만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 때문에 그 세계는 누구에게나 열린 세계가 아닌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는 닫힌 세계다.
이러한 폐쇄성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 캐슬에 안착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캐슬은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어찌보면 SKY 캐슬의 네 가족은 ‘유사(類似) 금수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과 흙수저의 대립은 블랙코미디가 된다.
흙수저 출신으로 어쩌다 법학도에서 검사가 되고 현재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차민혁은 금수저를 쥐었을까? 그는 손가락으로 피라미드를 가리키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보여주고 이 야망 앞에 무한히 헌신할 것을 종용한다.
‘유사 금수저’ 곽미향은 흙수저로서의 삶을 부정하고 폄훼한다. 그녀의 강박은 진짜 금수저를 향한 길에 머물러 있다. 그들에게 흙수저는 자신의 과거가 아닌 경멸의 대상이 된다.
그녀의 죽음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희생당하는 ‘맥거핀’에 지나지 않았다. 흙수저는 흙수저일 뿐 결코 금수저에 이를 수 없는 시청자의 주의를 끄는 일종의 트릭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금수저를 쥘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젖었던 사람들에게 참 허탈한 죽음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흙수저 출신을 찾을 수 있다. 2등은 기억되지 않는 사회, 개천 출신의 김주영의 몰락 앞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사금수저들에 대한 그녀의 조롱은 “감당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마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심리적인 전쟁과 같은 가문들 간의 입학 경쟁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부부간에 또한 그 자녀들 간에 끔찍하고 때로는 목숨까지 위협하는 대립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경쟁은 가장 우수한 자들을 위한 적자생존을 넘어 파괴적이고 정신병적이기까지 한 통과의례가 된다고, 그곳의 풍경은 자살과 폭력, 파괴된 인성의 흔적들로 얼룩져 있다고 말한다.
허공 위에 떠있는 성, 아무나 오르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리그로 살아가는 성.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1898~1967)의 ‘피레네의 성’과 같은 모든 것을 초월한 성이다.
이들 앞에 노력과 성공이란 법칙은 없다. 그들의 세계를 거대한 바위와 함께 극적인 별세계를 이룬다. 사람들은 시공의 물리법칙을 믿는다. 노력에 의해 자신이 금수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믿는다. 그런데 실제 모습은 그림처럼 예측이 가능한 관점을 뒤집고 있다.
그림 속 거대한 바윗덩어리 위에는 옅은 황토색으로 채색한 중세양식의 성곽이 육중(肉重)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성곽의 형태는 이미 그 자체로서 기존의 현실의 세계에서 완연히 분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