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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Apr 11. 2019

술이 떡이 된 사람,
술이 덕이 된 사람

술이 떡이 된 사람, 술이 덕이 된 사람     


술 한 말에 시 한 수를 지었다는 이백.

그의 시 월하독주(月下独酌)는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그의 술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꽃밭 가운데 술 한 병 

함께할 사람이 없어 혼자 즐기노라

술잔 들어 밝은 달 모셔오니

그림자와 같이 셋이 되었네

그러나 달은 술 못하고 

그림자는 그저 나만 따라 움직일 뿐

이대로 달과 그림자나마 벗 삼아 

이 아름다운 봄 가기 전에 흠뻑 즐기리     

시선(詩仙) 이백

그 이백 만큼이나 술을 좋아한 송강 정철 또한 술에 대한 사랑을 유명한 장진주사(將進酒辭)에 풀어 놓았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주리어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 술에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바람 불 제 뉘우친들 어찌리.      


인간이 죽으면 가마니 덮여 지게에 얹혀 가든, 호화로운 상여에 여럿이 울며 따라가든 무덤에 가기는 마찬가지이니 살아 있을 때 마시고 즐기라고 내용이다.     

본 뜻이야 인생 무상과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한 것이겠지만 술에 대한 옛사람들의 정서를 얼핏 엿볼 수 있다.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

술은 동서고금을 떠나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어 영원한 애주가들의 친구가 되어왔다. 슬픔을 달랠 때나 기쁨을 나눌 때 인간과 함께 했던 술. 그 역사 속에는 인간 사회의 생생한 모습과 은밀한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그것이 그 이야기가 희극적이든 비극적이든 술은 인간 사회 깊숙한 모습을 세상에 보여 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인간을 술을 만들고 술은 인간의 이야기를 만든 것이리라.     


술이 만든 인간의 이야기는 고대 이전, 신화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오시리스가 그의 넷째 오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Isis)에게 술 빚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시스는 인간에게 맥주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의 보리 수확장면을 묘사한 벽화

오시리스는 죽어서는 부활의 신 그리고 저승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고대 이집트의 장례식 진행 중, 장례를 주관하는 사람은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오시리스의 눈에서 흘린 눈물, 호루스의 눈을 마시게나.' 


오시리스의 눈물은 맥주를 말한다.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길에 목이라도 축이고 가라는 의미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디오니소스가 포도나무 재배법과 와인 양조법을 터득하여 이를 인간에게 전파했다고 한다. 그 역시 오시리스처럼 죽었다 살아나기를 거듭하는 ‘부활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매 해 겨울이면 잎을 모두 털어내었다가 봄이 되면 새순과 함께 소생하는 포도나무의 모습에서 부활의 신이란 호칭이 붙었다고 하는가 하면, 술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삶과 죽음의 드라마틱한 요소로 해석하기도 한다.     

술의 신이자 부활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

디오니소스의 신화에서 인간에게 술빚는 법을 전수하는 장면이 있다. 그가 한 마을에가 그 마을 농부인 이카리오스에게 포도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이카리오스가 자신이 빚은 술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 마시게 했는데 이 술을 마신 사람들이 모두 잠에 빠지게 된다. 이를 지켜본 마을 장로들은 이카리오스가 사람들에게 독을 먹였다고 생각하고 그를 죽여버렸다.     

이 사건 이후 마을이 전염병과 기근으로 황폐해지자 사람들은 신탁을 의뢰해 디오니소스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알게 된다. 그때서야 마을 사람들은 디오니소스의 참뜻을 깨우치고 그를 신으로 숭배하게 된다.     


구약성경에서는 신이 노아에게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제조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의 술에 대한 일화는 창세기 9장에 등장한다. 노아가 농사를 짓고 난 후 그것으로 술을 빚어 마시고 취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잠을 자는 실수를 한다. 

그 모습을 본 아들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큰아들 샘과 막내 야벳은 말없이 뒷걸음으로 들어가 벌거벗은 노아를 옷으로 덮어준다. 그런데 둘째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말하고 다녀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술취한 노아와 세 아들

동양을 보면 중국에서 8000년 전 역사 유물에서 술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기록상으로는 전국책(戰國策)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술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되어 있다. 중국 황제의 딸 의적이 술을 빚어 황제에게 올렸다는 내용이 있다. 한국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탄생설화에 등장한다. 압록강에서 물놀이하던 유화라는 여인이 술에 취해서 해모수와 관계를 갖고 아들을 낳았는데 이가 주몽이라고 한다.      


이렇게 동서양 모두 술은 신화의 탄생과 함께 해왔다. 


오랜 세월 인간의 사랑을 받아온 술. 


이 술이 오늘날 불행 부르는 독주가 되고 있다. 사랑도 과하면 병이 된다. 술은 어찌 보면 모순덩어리이다. 연인간의 유혹의 수단이자 불행의 씨앗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가난에 빠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분노한 백성들에게 폭동의 원인이지만 세금을 거두는 국가에겐 수입원이다.     

 

이렇게 술은 양면성을 지닌다. 

지나치면 긍정적인 결과보다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술에 대해 풍류와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관대해왔다. 이 때문에 음주운전을 비롯해 갖가지 음주 관련 사고로 엄청난 사회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러한 술문화가 사회적으로 많은 폐해를 낳고 개인적으로는 중독을 부른다.

사람들은 ‘사는 게 힘들어서’, 혹은 ‘누군가를 잊지 못해’, ‘추억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 그런데 문제는 위로가 되거나 축복이 되어야할 술이 ‘중독’ 혹은 ‘의존’으로 연결되고 뇌 손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동물이다. 생물학적 현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술에 의해 손상된 뇌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이는 불안과 우울,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 심지어는 환각상태를 부르기도 한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술에 의해 그의 그림과 인생이 크게 달라진 인물이다. 그는 압생트라는 무려 45~70도에 이르는 독주에 중독되어 있었다. 

압생트는 그에게 독함만큼이나 지독하게 매력적인 술이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압생트는 위로를 주는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술은 사물을 여러 개로 보이게 하는가하면 흐릿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후유증이 있다. 게다가 사물을 노랗게 보이게 하는 황시증(黃視症)까지 수반한다.


어느 날 고갱과 다툰 후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귀를 자르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대해 아마도 심각한 압생트 중독으로 인한 정신분열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의 슬픔과 비애가 묻어나는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걸작 ‘별이 빛나는 밤’. 이 작품에서도 역시 압생트를 나타내는 초록색과 황색을 주되게 사용되었다.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가난한 예술가의 술이자 고흐의 마음을 달래주던 압생트, 어찌 보면 그에게 중독은 독이 아닌 약이었는지도 모른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중독이 개인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지만 만취는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인간 사회에 드리운 음주와 만취의 어두운 그림자는 항상 존재해왔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술은 자제력을 시험하는 도구였다고 한다. 그만큼 자제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이것을 이용해 사람을 평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인간의 자제력을 잃게 하는 술의 사회적 폐해는 심각하다. 

음주운전, 성폭력, 묻지마 폭행 등 강력 사건 상당수는 과도한 술에서 출발한다. 


술을 마시고 일으킨 사건, 사고에서 “술 마셔서 기억에 없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고, “술 마시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하며 관용을 베푸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주취감경'     


한국 사회에서 최근 이러한 술에 취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형량을 낮춰주는 관행이 이슈로 떠올랐다. 일본의 경우도 한국처럼 이러한 ‘심신미약’을 인정하는 관행이 일부 존재하지만 미국과 중국에서는 주취 감경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도 ‘완전명정죄’라 해서 술 마신 상태에서의 범죄라 해도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처벌하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주취 상태에서의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쓴 편지 내용에 이런 구절이 있다.


"소가 물 마시 듯 마시는 저 사람들은 뭐냐" (다산시문집 중)

술이란 적당히 마셔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말하길,

"술이 입술과 혀를 적시지 않고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은 향기로우나, 과하면 해가 된다는 가르침을 아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술 평론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술에는 인생을 건 장인이 있었고 세월이 쌓아놓은 제조 비법이 있었고 곰삭은 문화가 있었고 휘청거리는 역사도 있었다. ... 진정한 주당이라면 술이 떡이 되지 말고 술이 덕이 되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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