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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Apr 19. 2019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무대 위에서 울고 있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과거의 기억이 그녀를 울게 한다.     

그녀는 2000년대 마돈나 다음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그녀의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그녀에게 항상 공포였다. 무자비한 폭력이 어머니에게 가해질 때면 그녀는 자기 방에 숨어 음악을 따라 부르며 공포를 이겨냈다. 

아버지의 폭력이 끝나고 나면 그녀의 어머니는 I’m OK(나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폭력을 잊기 위해 시작한 노래가 그녀의 인생이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했던 말 “I’m OK”는 그녀의 노래가 되었다.      


옛날 옛적에 한 소녀가 있었어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배워야했지

전쟁터 같은 집에서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마치 폭풍 같은 이런 생활에서

어떻게 숨어야 하는지 몰랐고

어머니의 얼굴에 보이는 아픔을 보면

나는 너무 슬퍼졌다

...     

-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I’m OK 중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투어 포스터

아길레라의 노래는 가족 간의 폭력으로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지배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되고, 부모 자식이라는 이유로 강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에게 연인이나 가족은 공포스러운 단어가 되어 있다.      


한국사회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 국가들에 비해 더 빈번하게 가족 간의 폭력과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통계적으로도 한국의 살인사건 중 가족 간에 일어나는 비율이 5%나 된다. 영국의 경우 1%, 총기 사용이 합법화되어 있는 미국이 2% 수준이다. 미국에 비해 2.5배, 영국에 비해서는 5배나 많은 수치다.     


이러한 현상은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의 영향이 크다. 자식에 대해 독립된 개채로서 보는 것이 아닌 소유물로 보는 그릇된 인식, 거기에 자식의 생명권까지 결정한다는 위험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고대 농경사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가족이라는 끈끈한 줄이 서로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비극의 올가미가 될 수도 있다.      

가부장 사회에서 가장은 가장 높은 권위를 유지하려한다. 그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복종을 요구한다. 가정 내에서의 복종,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에 대한 충성까지 하나의 실타레로 엮여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가부장 사회의 억압과 학대가 대를 이어 학습되어 반복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이 그대로 자녀들에게 행해지는 형태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여자의 경우 ‘메데이아 콤플렉스’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어머니에게 학대당한 기억을 가진 여자가 자기 자식에게도 똑같이 분노를 표출하는 콤플렉스다. 

남자들은 ‘크로노스 콤플렉스’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자녀의 가능성을 아버지의 권위를 넘보는 것으로 보아 폭력과 방기로 꺾어버린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악녀로만 알려진 메데이아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총명했고 마법을 부리는 능력도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황금양모를 훔치러 온 이아손이란 남자에게 첫눈에 반해 깊이 빠져버린다. 그녀의 사랑하는 이를 위해 동생을 죽이고 함께 탈출한다.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코린트로 온 이아손은 두 아들을 낳아 행복하게 사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아손은 테베의 왕 크레온으로부터 자신의 딸과 결혼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메데이아를 버린다. 

그녀는 분노했고 이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먼저 남편의 신부가 될 여인을 독살하고 남편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버린다. 그가 가장 아끼는 두 자식들을 죽여 대를 잇지 못하도록 하고 평생을 죄책감과 고통 속에 살게 만든다.      

메데이아와 그의 자식들

이것이 메데이아에 대한 신화 이야기다. 이 비극은 단순히 보면 한 여인의 한 맺힌 복수극이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저항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사회에서 자식의 의미는 가부장 사회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보장한다. 이아손이 노리고 있는 것은 가부장 사회의 확대와 연속이다. 메데이가가 낳은 자식, 그리고 새로이 결혼을 통해 태어날 미래의 아이들은 가부장 사회에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시켜주고 지속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메데이아가 자식들을 죽임으로써 이아손에게 가장 치명적인 복수를 한 것이다.    

  

그런데 크로노스 콤플렉스는 가부장 사회에서의 권위에 더 직접적이고 적극적이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가 자신의 자식들을 삼킨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들의 왕의 자리에 오른 크로노스가 자식들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듣고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크로노스는 이를 두려워해 자신의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삼켜버린다. 

루벤스가 그린 자식을 삼키는 크로노스

그러자 크로노스의 부인 레아는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 돌덩이를 강보에 싸 그에게 준다. 이렇게 해서 막내 제우스를 포함한 몇몇 형제가 살아남는다. 이후 제우스는 그의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형제들을 수출하고 아버지 크로노스는 타르타로스에 영원히 가둬버린다.     


제우스가 구한 이들이 바로 우리가 아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이다. 공이 제일 큰 제우스가 하늘을 맡고, 포세이돈이 바다를, 하데스가 지하 세계를 다스리게 된다.   

    

여기서 크로노스 콤플렉스의 특징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권위에 절대복종하고 따를 것을 강요한다. 자식들의 성장에도 아무런 관심과 감정조차 없다. 게다가 자식의 잠재력은 자식의 독립성으로 보지 않고 권위를 위협하는 부정적인 요소로 간주한다.

그러다 자신의 권위가 훼손되었다고 느껴질 때는 난폭성이 드러난다. 자식들이 자신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족이 친구 같은, 동지라는 생각보다 상하관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영화 스타워즈에도 이러한 크로노스 콤플렉스가 나타난다.     

영화에서 다스베이더와 적으로 만난 스카이워커는 나중에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다스베이더 역시 그러한 특수 관계를 이용해 스카이워커를 설득하지만, 스카이워커는 다스베이더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스카이워커가 자신의 편이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다스베이더는 그의 제국의 방해물로 여긴다. 그리고 아들의 손을 잘라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      

이렇듯 자신의 아들의 뜻을 따를 것을 강요하다 거절당하자 주체적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면에서 크로노스 콤플렉스를 엿볼 수 있다.      


가부장 사회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권위와 도전에 대한 폭력적인 응징은 결국 비극을 부른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소유와 강제라는 속성과 만나면 그 사랑은 무너진다.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한다는 생각, 남의 가정사에 신경쓰지 말라는 막무가내, 집안에서 내 지위만을 따지는 이기심이 콤플렉스를 부른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부모의 역할, 가장의 역할은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감싸는 것이다. 그 사랑은 서로 독립된 주체로서 인정할 때만이 힘을 발휘한다. 소유와 집착은 가정의 질적인 성장을 방해할 뿐이다. 


내 삶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타인이 아닌 오롯이 나 자신과 동등한, 삶의 한 과정을 공유하는 파트너로서 인정할 때 행복한 가족 관계가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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