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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Apr 19. 2019

나와 다른 그대, 고로 혐오한다

나와 다른 그대, 고로 혐오한다   

   

최초의 여성, 판도라.

판도라의 이야기는 여성의 창조신화 이전에 여성에 대한 ‘혐오’의 신화다. 


헤시오도스가 전하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여성이 창조되기 이전의 인류는 남자뿐이었다. 이들은 신들과 소통하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가 여러 신들 몰래 신들의 세계에 있는 불을 훔쳐다 인간들에게 주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묶어두고 독수리로 하여금 그의 간을 쪼아먹도록 하는 벌을 내렸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즐거움을 위하여 악(惡)한 것(evil thing for their delight)”을 선물한다. 여기서 ‘악한 것’은 최초의 여성 ‘판도라’였다.     


판도라는 제우스로부터 절대 열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하나의 단지를 받았다. 프로메테우스의 형제 에피메테우스는 인간 세계에 내려온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결혼한다. 


하지만 결혼 생활 도중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한 판도라는 단지를 열고 만다. 그 속에 있던 모든 질병, 슬픔, 가난, 전쟁, 증오 등의 악이 쏟아져 나왔다. 놀란 판도라는 단지를 닫았고 맨 밑에 있던 '희망'만이 단지 속에 남게 된다.     

최초의 여성, 판도라

이 신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인간의 평화를 해치는 존재로서의 여성, 인간의 모든 아픔과 고통의 원인을 제공하는 ‘여성에 대한 혐오’다.      


고대부터 혐오는 나와 다른 무엇에 대해 그것을 드러내고 배척했다. 여성과 남성 간의 혐오, 동성애에 대한 혐오,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사상에 대한 혐오는 차별을 낳았다. 

시대와 지역, 문화적 환경에 따라 혐오의 대상이 바뀌기도 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혐오의 표현이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이 동성애이다. 한쪽에서는 인간의 정당한 권리를 이야기하고 한쪽은 신의 섭리를 이야기한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그룹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성경의 이야기다.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가 동성애 반대의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배트맨이 활동하던 도시의 이름은 ‘고담시’가 여기서 이름을 딸 정도로 범죄와 부패, 탐욕의 도시로 묘사된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의 혐오가 나타난다. 하나는 ‘동성애’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의 어리석음’에 대한 혐오다.


이들의 성적 타락이 극에 달해 신의 분노로 유황불로 멸망케 했다는 것에서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소돔을 향해 뒤돌아본 롯의 아내 이야기에서는 여성의 어리석음과 나약한 믿음을 이야기하며 이들에 대한 혐오를 이야기한다.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탈출하는 롯과 그의 아내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 인사들이 여성비하를 위해 성경의 갈빗대 이야기와 함께 종종 인용하는 구절이다.     

예수는 소돔과 롯의 아내를 누가복음에서 한번 언급하다. 여기서 롯의 아내를 이야기한 사실만으로 예수가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했다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예수는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어찌 행동해야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예수의 뒤돌아보지 말라는 것은 현실적인 욕망에 미련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욕망과 과거에 대한 미련은 도래할 신의 세상에서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례로 롯의 아내를 끌어들인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찬반에 앞서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가 실재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당시 예수가 활동하건 시기 이전, 즉 구약의 시기에 지중해 지역의 동성에는 소돔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나 문학 속에서 이런 동성애의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의 경우, 동성인 여성을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때문에 그녀가 태어난 레스보스 섬에서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나왔다. 

절벽에서 자살을 준비하는 사포

그녀의 시를 보면 이러한 동성애를 읽을 수 있다.     


그는 내게 신처럼 보여 

             -사포 시/최영미 옮김      

그는 내게 신처럼 빛나 보여, 

네 앞에 마주앉은 남자, 

달콤한 너의 말에 귀 기울이며 

너의 매혹적인 웃음이 흩어질 때면 

내 가슴이 가늘게 떨리네.      

너를 슬쩍 쳐다보기만 해도, 내 혀가 굳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네.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     


이 시에서 사포는 신처럼 빛나는 남자 ‘그’의 앞에 있는 ‘너’에게 질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사포는 이성의 남편도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죽고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자, 레스보스 섬의 여자들을 모아 같이 지낼 수 있는 학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들을 '동지'라 부르며 동성애를 즐겼다. 그것은 당시에 드문 일이 아니었다. 여성 동성애도 남성 동성애와 다를 바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아폴론 역시 동성 간의 사랑을 했다. 


그의 태양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소년 히아킨토스를 사랑한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들판에서 원반던지기를 하던 도중, 바람의 질투로 아폴론이 던진 원반에 죽은 소년 히아킨토스. 그가 흘린 피가 땅 속으로 스며들어 히아신스라는 꽃으로 부활하는 이야기는 사랑과 이별의 대표 주제가 되고 있다. 

     

히아킨토스와 아폴론

그리스에서는 이러한 동성 간의 사랑의 힘을 믿는 군대도 등장했다. 일명 신성대라는 부대다. 

그리스의 강자 스파르타가 몰락으로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테베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부터다. 이 전쟁에서 가장 많은 공을 세운 부대가 바로 신성대였다.      


이 부대는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특수부대였다. 이들이 전장에서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은 동성 연인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테베의 신성대

당시 그리스에서 여성과 동침은 육체의 생명을 낳고, 남성끼리의 동침은 마음의 생명을 낳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들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실제로 훗날 알렉산더와의 전쟁에서 300명 중 단 4명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를 지켰다고 한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에 테베가 그리스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있어 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고대부터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며 이어오던 동성애는 오늘날에 와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혐오는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나와 다른 것을 포용하고 관용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운데 일어난다.     


혐오의 또 다른 모습을 제주도에 난민이 상륙했을 때도 극단적으로 나타난바 있다. 그 모습은 흡사 영화 <디스트릭트 9>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 영화는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외부인들에 대한 차별, 그리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외계인들로 인한 범죄 등) 등을 표현한다. 제주 난민을 두고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은 것과 같은 현상이다.     

영화 디스트릭트 9

영화에서 외계인은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빈민을 이야기한다. 영화에서 외계인들을 괴물로 표현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들을 괴물취급하며 혐오를 표현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차별과 혐오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외계인을 난민과 외부인, 빈민으로 치환하면 우리 시대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왜 그들과 함께 해야 하지?” “만일 수용한다면 그들을 어느 한 장소에 격리시켜야해!” “세금이 들어가지만 사회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비용은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이익을 취하기도 하고 인도주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영화의 내용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난민을 대하며 사람들은 ‘혐오’의 대상이 될 만한 그럴듯한 허상과 신화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들의 문화와 종교는 성적 차별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하고, 거리낌 없이 테러와 약탈, 강간이 이루어진다는 편견을 심는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혐오’받지 않는 대상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편견은 혐오를 부르고 SNS, 미디어는 그 혐오를 확산시킨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는 ‘인간의 가슴에 창문을 내지 않는 것’을 두고 모모스의 불평을 들었다고 한다. 인간의 가슴에 창이 없으니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고, 이것이 서로간의 갈등과 대립의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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