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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Apr 25. 2019

거품의 바람이 불면
이성은 잠을 잔다

거품의 바람이 불면 이성은 잠을 잔다     


한국의 어느 소설가는 아파트를 “인간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넷”라고 표현한 바 있다. 


“거실에 앉으면 건너편 아파트 거실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어렴풋이 보인다. 하지만 정작 옆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가 캐비넷이라 말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아파트가 사람들의 안전과 개별성을 충분해 보장해준다고 믿고 있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이나 위험요소 등과 격리될 수 있는 최대한 안전한 공간이 바로 아파트라는 것이다.     


그런데 외부인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주거라는 개념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쓴 <아파트 공화국>란 책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이 모델로 제시하는 것은 서울의 아파트들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이미 매력을 잃어버린 주거형태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해서 그 힘을 잃지 않고 진화하는가에 주목했다.      


아파트, 어느덧 서울의 상징이 되어버린 기이한 집합들.

그 출발은 한정된 서울의 땅에 비해 인구밀도는 지나칠 정도로 높은데 있다고들 말한다. 다시 말해 단독주택이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이 아파트를 불렀다는 말이다.      

하지만 줄레조를 포함한 수많은 도시환경 연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현대적인 욕망이 극대로 투영된 한 형태라는 것이다. 개발 초창기 이후 아파트는 환금성이 뛰어난 돈이나 주식처럼 인식되어 왔다. 동시에 현대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처럼 굳어졌다. 


어찌보면 아파트는 서울사람 뿐 아니라 일반적인 한국사회의 욕망의 아이콘이다. 문제는 이러한 욕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데 있다. 이미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 간의 욕망의 사슬로 굳어졌다.      


그 과정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투기’다. 투기란 사전적으로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하는 일’이라 정의하고 있다. 투자와 투기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방법에 있어 차이가 크다. 생산 활동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를 투기로 보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투기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부동산 불패’란 낙관적 신조어가 나타나기까지 했다.

이러한 투기에는 거품이 뒤따른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때는 바로 그 거품이 꺼졌을 때다. 이는 결국 경제의 침체로 연결된다.      


이러한 사례를 가까운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1991년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며 경기 침체가 시작됐는데, 불황이 2001년까지 약 10년간 계속되며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렸다.       


유럽도 이미 투기와 거품을 겪은 극단적인 사례가 있다.


‘튤립 파동’이라는 자본주의 역사상 최초의 거품경제로 알려진 사건이다.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고 하는 튤립은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이다. 오스만제국을 거쳐 16세기 무렵 무역 상인들을 통해 유럽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많이 재배해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튤립이 부의 상징으로 네덜란드 귀족과 부유층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장 레옹 제롬이 그린 그린 튤립 파동

하지만 씨앗으로부터 꽃으로 피우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한 뿌리에서 나오는 꽃도 많지 않다 보니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힘들었다. 

희귀 품종이다 보니 튤립을 두고 투기 수요가 폭증하면서 튤립 가격이 뿌리 당 1억 원을 호가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튤립 버블을 더 확산시킨 것이 선물 거래였다. 개화까지 시간이 걸리다 보니 현물 없이 미래 언제 가져가겠다는 계약서만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아마도 최초의 선물(future) 거래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투기 상인들이 선물로 향후 피울 꽃까지 독점하게 되다보니 그 가격은 더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튤립 불패’ 신화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바보취급을 당하기까지 했다.


끝없이 오르는 가격에 불안해하면서도 계속 오를 거라는 기대와 누군가 살 사람이 존재할 거라는 믿음에 이러한 현상은 계속됐다. 


그러다 지나친 가격상승에 구입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거품은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전 재산을 처분해 투자했던 사람들은 급격한 거품 붕괴와 함께 동반 추락하고 만다.

     

당시의 상황을 풍자한 그림

결과는 참혹했다. 투기를 이어가던 상인들은 줄줄이 파산했고, 편승했던 귀족들도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영지를 내놓아야 했다. 탐욕의 끝은 개인 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빛과 어둠의 화가’ 렘브란트 역시 이 광풍 속에 있다 파산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집은 물론이고 미술품들까지 경매로 넘기고 말년까지 그 빚을 갚기 위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  


네덜란드 사회에서 인간의 탐욕과 광기가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투기가 거품으로 이어진 최초의 사건이다. 실제의 가치보다 터무니없이 부풀려지는 거품 현상은 가격 차이에 의한 이득이라는 유혹의 결과다. 문제는 거품은 언제라도 터진다는 것이다. 이때 가격이 폭락하면서 경제에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튤립 피버>이다. 튤립 피버는 네덜란드 황금기인 이 시기에 벌어진 튤립 공황을 의미한다.


영화 <튤립 피버>는 당시 튤립 파동과 금지된 사랑을 은유적으로 대치시켜 과욕의 대가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유부녀 소피아와 화가 얀의 위태로운 사랑의 거품은 튤립 시장의 거품과 닮아 있다. 또한 시장의 흥망과 사랑의 파국이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투기와 사랑은 모두 현실에 눈멀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영화의 등장 인물은 자신이 얻고자하는 것을 위해 끝없이 선택의 세계로 뛰어든다. 소피아와 얀은 사랑 때문에 위험한 선택을 한다. 소피아와 하녀 마리아는 그들만의 비밀을 지켜주는 선택을 한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얀과 윌리엄은 튤립 투기광풍 속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선택을 통해 사랑의 도피를 꿈꾼다.

영화 튤립 피버의 포스터

이들의 사랑도 현실에 눈을 뜨는 순간 파국을 맞는다. 소피아와 얀의 사랑이 마치 튤립 투기처럼 열정적이지만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부하기 쉽지 않은 유혹들이다.     

인간은 이러한 유혹 앞에 항상 무너져 왔었다. 특히 투기라는 유혹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신들의 제국'인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신성로마제국의 포럼에서도 투기의 치명적인 유혹은 존재해왔다. 이 때문에 물가는 치솟고 파산자가 속출하고 시민들은 고통 받아왔다. 


중세를 대표하는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하길 "이윤을 향한 끝없는 탐욕은 권력과 섹스에 대한 탐욕과 더불어 3대 중죄"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탐욕이 거품으로 이어지고, 광기가 거품에 공기를 불어넣고, 어느 순간 공포가 극에 달해 거품이 터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거품의 바람이 불면 이성은 잠을 자게 된다. 그리고 탐욕이라는 내면의 존재가 깨어난다.    

  

<튤립 피버>에서 하녀 마리아가 "그때 우리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회고에서 우리는 오늘을 보게 된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역사는 항상 되풀이되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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