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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Jul 31. 2019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보물 '갯벌'

고산/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한국문화 찾기

갯벌, 이곳은 단순히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이 아니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생태계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변화하며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무대이다. 광활하고 거대한 품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바다 습지, 그곳이 바로 갯벌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국에서 갯벌은 쓸모없는 땅으로만 여겨졌었다. 심지어 이를 표현하는 관형어로 갯벌을 가리키는 ‘뻘’을 넣어 쓰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이 하는 말로 ‘뻘소리’, ‘뻘짓’과 같은 표현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이 땅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오랜 세월 귀중한 생명의 소중한 보금자리로 유지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갯벌에 대한 연구보고를 보면 멸종 위기종 3분의 1이 이곳 갯벌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또한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기도 한다. 갯벌을 ‘자연의 보물’ 또는 ‘마르지 않는 통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런 생산성 때문이다. 갯벌의 생산력은 육지와 비교해 9배나 높은 가치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로 엄청난 자연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갯벌은 생명이 자라고 다른 생명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는 공간이다. 생명의 원천이면서 그곳을 터전 삼아 사는 사람들의 생활의 공간이다. 이곳의 수많은 생명은 인간들이 발을 들여놓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퇴적물이 쌓여 갯벌로 만들어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만 년에 가깝다고 하니 인간의 역사는 보잘것없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 


자연의 선물 갯벌


이 갯벌이 만들어지는 데 걸린 시간 만큼이나 보존도 쉽지는 않다. 한국은 서해의 얕은 바다로 갯벌이 만들어지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세계 어디를 보더라도 한국만큼 갯벌을 잘 보존한 곳을 찾기란 쉽기 않다. 오늘날 세계의 5대 갯벌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서해안 갯벌과 캐나다 동부, 미국 동부, 아마존 하구, 북해 연안 정도가 그나마 남은 갯벌이다. 

특히 한국의 갯벌에 사는 갯지렁이 등 대형저서동물의 경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북해 연안 갯벌보다 무려 5배가 넘는 800여 종이 살고 있다. 


생김새가 꼭 나룻배의 사공이 노 젓는 모습과 흡사한 저어새도 한국의 갯벌에서만 번식하는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이다.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얕은 물 속에 넣고 좌우로 저으면서 먹이를 찾는 특별한 이 새는 어느 순간부터 한국의 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갈매기, 알락꼬리마도요 등의 철새들 역시 이곳 갯벌을 무대로 살아간다. 

한국의 습지에는 조류 90종에 곤충 132종, 식물 31종, 야생동물 7종, 저서생물(바다, 늪, 하천 등의 물 밑바닥에서 사는 생물) 29종 등 모두 289종이 사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상당수는 바다 습지인 갯벌에서 삶을 유지해간다. 갯벌은 그야말로 생명을 보듬어주고 있는 땅이다. 

생명이 숨 쉬는, 생명을 보호해주는 공간으로서 갯벌. 이곳은 사람들로 치면 우리 몸 안의 오염물질을 정화해 배설해 주는 콩팥과 같은 곳이다.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오염원인 폐수나 하수를 정화하는 데 있어 이 이상의 정화시설이 없다.


갯벌을 무대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생물은 나름의 정화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특히 바지락은 다른 생물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정화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능력에 관한 연구에서 한국 갯벌의 정화능력이 영국의 갯벌보다 15배 이상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곳의 정화능력은 전국의 하수종말처리장을 모두 합한 것보다 약 1.5배나 뛰어나다. 


이들이 없다면 인간은 어마어마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폐수와 하수를 화학적인 방법이나 생물학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려면 비용뿐 아니라 이에 따른 새로운 오염을 유발한다. 수질오염이나 대기오염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갯벌에 사는 생물들과 갯벌의 갈대 습지에 의한 정화는 더 이상의 수질오염이나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들에 의한 정화는 수질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구온난화로 인류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 자연의 역습이 인류에게 큰 재앙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는 것은 인류가 사용하는 화석연료 때문이다. 화석연료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이를 연소시킬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도 늘어난다. 결국, 지구온난화를 늦추려면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탄소의 흐름을 파악하고, 대기 중으로 스며든 것들을 흡수해야 한다. 

이러한 지구 온난화를 막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블루카본’이다. 블루카본은 열대 해안에서 자라는 맹그로브 숲이나, 바닷물이 들어오는 습지와 갯벌 같은 해안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뜻한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습지에는 대개 염분에 강한 ‘염생 식물’이 자란다. 갈대, 칠면초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얕은 바닷속에는 ‘잘피’라는 특이한 이름의 해초들이 산다. 잘피는 물속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서 양분을 흡수하는 바다 식물이다. 잘피류는 바닷속 숲을 이루면서 탄소를 흡수하는 동시에, 어류, 갑각류, 연체동물, 갯지렁이, 바닷새의 서식지가 되기도 한다. 


바다의 금광


갯벌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큰 선물을 준다. 바로 소금이다. 갯벌은 소금의 생산기지이다. 염전은 바닷물을 가둔 후 증발 시켜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다. 이는 ‘바닷가의 소금밭’이라는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다단계 염전에 의한 완전한 천일염을 얻지는 못했다. 바닷가 고인 물이 증발하고 난 자리에서 소금을 취했다. 그런데도 갯벌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며 새로운 저장 문화를 만들었다. 고대 문명의 유적이 대부분 강 하류나 갯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이러한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금은 자연이 주지만 그것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정성과 노력이 있어야만 그것을 취할 수 있게 했다. 소금이라는 말 자체가 ‘작은 금’, 소금(小金)이라고 부르게 된 것을 보면 그만큼 얻기 힘들고 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갯벌에서 나온 소금은 한국인에겐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이 만든 소금은 중국을 관통해 긴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역로를 개척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돈의 가치를 대신하기도 했다. 실제 염화(鹽貨)는 소금을 틀에 넣어 굳힌 다음 화폐 대신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소금이 돈이 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소금의 생산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그 기원이 확실하지 않다. 다만 중국으로부터 그 기술이 유입되었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중국보다 갯벌이 잘 발달해 소금 생산에 적지로 부상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국에서 소금 생산이 활발했다는 사실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기록을 보면 조선 시대에도 서해안과 남해안의 갯벌은 소금 생산의 적지라고 말하고 있다. 갯벌의 둑을 만들어 물을 가둔 다음 이를 증발시켜 만드는 천일염이 그것이다.


조선 시대 이전 한국에서 소금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에서의 소금에 대한 기록은 멀리 진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보면 소금 생산은 그보다 훨씬 앞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진시황은 소금의 교역에서 생긴 이익으로 군대를 양성하고 무기를 개발했다고 한다. 

소금에 대한 국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그 수입으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소금에 대한 지배권은 여전히 국가에 남아 재정을 튼튼히 하는 국가의 창고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중국의 위대한 유산은 소금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금이 주는 부(富)는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마천은 기원전 154년, 촉의 유바(劉備)가 바닷물로 만든 소금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고 적고 있다. 그 덕에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걷지 않고도 나라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상고시대부터 소금 등에 절인 김치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조선에는 염수(鹽水)라는 소금강이 있었는데 이곳 소금우물(井鹽)에서 퍼 올린 소금물을 이용해 소금을 생산했다고 한다.


이렇게 갯벌은 인류에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선물을 안겼다.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태풍·해일과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하는가 하면,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금을 선물한다. 또한, 내륙으로 바닷물이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며, 아름다운 경관으로 사람들의 휴식 및 여가 장소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 갯벌이 지닌 가치는 숫자로 환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갯벌은 생명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에 와서 인류의 보물창고 갯벌이 매립과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서울시 면적의 몇 배가 되는 갯벌을 간척사업이란 명목하에 잃었다.

이러한 현실은 오래전에 한국에서 엄청난 관객을 몰고 온 영화 <아바타>를 떠올리게 된다. 이 영화는 인간의 탐욕과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파괴되고 있는 환경에 대한 자연의 경고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보여주는 것은 영화 속 무대가 되는 판도라 행성의 자연이다. 이 행성의 자연은 밤이면 야광으로 빛나며 서로 연결되어 신경 물질을 전달한다. 마치 우리 지구의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이들 또한 소통한다.


<아바타>는 단순한 공상과학영화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경고를 보내는 영화다. 어찌 보면 판도라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이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심으로 강을 파헤쳐 하천 생태계를 파괴하는 모습이나, 갯벌을 메워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모습에서 판도라 행성의 주인인 나비 족의 신음을 듣게 된다. 도시 건설과 영토의 확장 등 인간의 욕심으로 사라져가는 갯벌은 이제 수 만 년을 이어온 마지막 가녀린 숨만 헐떡거리고 있다. 매립된 갯벌 속에서 지구의 나비 족으로 전락한 갯벌 생명은 죽음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의 갯벌이 그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습지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의해 서서히 그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또한, 정부에서도 갯벌의 소중함을 알고 연안 습지보호구역으로 갯벌 14곳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나아가 갯벌생태계 복원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하니 다행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갯벌은 경제적 가치로 흥정하는 대상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복합공간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례가 바로 바덴해의 갯벌이 될 수 있다.

이곳 역시 지난 50년간 매립과 개발로 몸살을 앓아왔다. 그러다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세 나라가 공동으로 바덴해 공동 관리 체계를 수립하여 갯벌 보호에 나섰다.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생태계 복원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사라진 수많은 종의 물고기와 새, 육상동물들이 다시 돌아왔고, 오늘날 해양 생태계의 보고가 되었다. 

이렇게 잘 보전된 갯벌은 관광자원으로서도 가치가 높아, 생태관광 수입이 연간 최대 1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인류문명이 발전하면서 사라질 뻔했던 연안 습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게 되면서 바덴해의 갯벌은 그 관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본보기가 되었다.

한국 또한 세계가 주시하는 일련의 노력이 있다. 

순천만의 경우가 한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순천만은 경관과 생태가 어우러지는 환경을 통해 생태 관광이라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해내고 있다. 이는 지역경제의 새로운 활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살아 있는 바다로 으뜸이다. 가막만과 여자만 그리고 순천만의 갯벌은 세계적인 생태 보고가 되고 있다. 여자만의 갯벌은 수많은 해양생물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자양분을 지니고 있다. 

바람과 파도와 갯벌 생물들의 움직임 속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삶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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