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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Dec 11. 2019

소소한 스케치 여행_ 칼프2

또또와 함께 떠난 문학스케치여행

독일 문학스케치 여행 3 : 네이버 포스트                                                                                                              

헤르만 헤세의 칼프 2

발밑으로 흐르는 나골트 강을 스치고 올라오는 짙은 검은숲의 향이 다리 위로 가득했다. 이 다리를 지나면 헤세가 말한 "브레멘과 나폴리 사이, 비엔나와 싱가포르 사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 칼프“가 나타난다. 도시의 중심 광장은 여전히 천 년 전부터 이어온 과거의 모습 그대로다. 앞서 발길을 재촉하던 관광객들도 이 다리를 건너면서부터는 특별히 서두르지 않았다. <수레바퀴 밑에서>와 <크눌프>에서 묘사된 풍경 하나하나가 어디선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가 <아름다워라, 청춘이여>에서 그의 젊은 시절 기쁨과 희망을 주었던 안나와의 소중한 추억도 이곳 어딘가에 스며 있을 것이다.
헤세가 적은 여행일기에서는 '나는 여름의 따뜻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태어났다. 나는 그 시간의 온도를 알게 모르게 평생 좋아하며 찾아다녔다"며 그의 고향 칼프를 그리워했다.
     
사실 그는 고향을 떠난 이후 꾸준히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언저리 어딘가를 헤매고 다녔다. 그의 말년에 발표한 에세이 <저녁 구름>을 보면,
"나는 저 밑 세상을 보며 생각한다. 누가 내게서 너를 훔쳐 가도 좋다고. 나는 이 세상에서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세상에 잘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세상도 나의 혐오에 충분히 앙갚음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항상 외로웠고 세상을 홀로 견뎌내고 있었다. 그의 시 ‘안개 속에서’를 보면 고향을 떠난 그의 외로움이 진하게 드러나 있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둠을, 떨칠 수 없게 조용히/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어둠을 모르는 자/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삶은 외로운 것/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누구든 혼자이다./  
     
스위스로의 망명 이후 그에게 고향은 더 큰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고향은 그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이고. 그의 작품의 원천이었다. 그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걸었을 니콜라우스 다리와 낚시를 즐겼던 나골트 강, 그가 뛰어놀던 골목과 교회 숲에서 보냈던 추억은 그의 책에서 되살아났다. 
    


펜드로잉_고산


그의 책 <수레바퀴 밑에서>에 그의 고향에 대한 기록이 영상을 보여주듯 기록되어 있다. 
“그는 천천히 시장 터를 가로질러 낡은 시청을 지나고, 시장 골목을 거쳐 대장간을 지나서 오래된 다리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한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넓은 다리 난간에 걸터앉았다. 그는 여러 달에 걸쳐 매일 네 번씩이나 여기를 지나다녔었다. 그런데도 다리 위에 있는 자그마한 고딕식의 예배당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강물이나 수문, 둑이나 방앗간 등을 전혀 눈여겨보지도 않았었다. 수영 터인 초원이나 수양버들이 늘어진 강변도 그냥 지나쳤었다. 그 강변에는 제혁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강물은 호수처럼 깊고 푸르게, 그리고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끝이 뾰족한 버드나무 가지들은 휘어진 채 강물에 닿을 정도로 깊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이 작품 외에 여러 작품에서 인간은 고향에서의 경험을 살아가는 내내 간직하며 고향을 떠나서도 그곳에서의 추억과 그리움을 되새긴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 추억의 모델이 된 니콜라우스 다리를 건너 본격적으로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소박한 분수가 눈에 들어온다. 일명 ‘헤세 광장(Herman Hesse Platz)’에 서 있는 분수대는 헤세가 견습공으로 일하던 시계공장 부근에 있다. 헤세의 초상화가 새겨진 이 분수대는 마을의 중심지에 있다가 훗날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걷는 길마다 책 속에 그 장면들이 그대로 그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헤세 광장의 분수대, 펜드로잉_고산


헤세 분수대를 등지고 좁은 골목길을 비집고 나가면 칼브의 상징인 시청사가 눈에 들어온다. 시청사 정면에 있는 6번지 가옥에는 헤세의 초상화와 그의 가족이 1874년부터 1881년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바로 6번지 가옥이 헤세가 태어난 생가다. 헤세 생가 아래층에는 상점이 들어서 있고 내부엔 일반 사람이 거주하기 때문에 여행자에게 개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생가 앞에 서면 머릿속에는 그의 영혼과 만나는 상상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가 실제로 경험하고 괴로워했던 삶의 한 조각이 이곳에 남아 있다. 
     
니콜라우스 다리 위의 헤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 바로 마르크트 광장이 보인다. 독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이름의 광장이다. 광장은 독일식 목조골조 형식의 주택이 둘러서 있다. 검은 숲 어디에서나 흔히 만나게 되는 전나무는 죽어 이들의 집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마그리트 광장 주변 골목, 펜드로잉_고산



광장은 마침 토요일이어서 시장 천막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관광객들과 시장바구니를 든 마을 사람들이 뒤섞여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광장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광장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또 다른 동상이 헤세의 작품 중 하나인 <크눌프(Knulp)> 동상이다. 광장 방향에서 바라본 것이지만 마르크트 다리를 지나 저축은행 앞에 약간은 건들거리는 모습으로 서있다. 그의 작품 속 크눌프는 방랑가였고, 불가사의한 인물이었으며, 항상 남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달하고자 했다. 
     
나의 이름으로 그대는 방황했고 
어리석은 일을 하여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때 그대 속에 있던 나 자신도 웃음거리가 되고 
또 사랑을 받았다. 
그대는 나의 형제며 분신이었다. 
     
<크눌프> 중에서
   
특히 이 작품 속의 크눌프는 항상 고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크눌프의 주인공이 이 곳 칼프의 거리에서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크눌프의 마지막 삶도 묘하게 이 조각상과 연결된다. 쇠약해지고 나이가 든 크눌프는 그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향한다. 도중에 만나게 된 그의 의사친구는 크눌프가 병들어 있음을 알아챈다. 친구가 그를 요양원으로 보내기 위해 대화하는 가운데 크눌프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게 되었는지가 드러난다. 결국 고향에 도착한 크눌프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추억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그리고 첫눈이 내리던 어느날 환각 속에서 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운명과 삶에게 화해를 청하며 숨을 거둔다.
나는 크눌프의 조금은 여유롭고 어딘지 껄렁해 보이는 모습에서 자유와 만날 수 있었다.
조각상을 뒤로하고 광장의 북쪽으로 약간은 다른 양식의 밝은 건물이 나타났다. 헤르만 헤세 박물관이다. 
그의 생가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헤르만 헤세 박물관, 펜드로잉_ 고산


박물관 내부에는 세계 각지에서 출판된 간행물과 사진 그리고 애장품들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다. 앙드레 지드, 로맹 롤랑,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 등 유명인사들과 주고받은 엽서와 육성이 담긴 레코드, 그가 사용한 타자기와 그림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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