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산 Dec 11. 2019

소소한 스케치 여행_칼프1

또또와 함께 떠나는 문학스케치 여행

독일 문학스케치 여행 2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프_1

이번 여행에서 가장 세밀하게 계획한 도시는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프(Calw)다. 나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 처음 세상의 눈을 뜨게 한 작가 헤세의 시선에서 그 책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 
모든 게 미숙했던 청소년기에 나는 그의 장편소설 <수레바퀴 밑에서>, 정신분석 연구로 자기탐구의 길을 개척한 대표작이라는 <데미안>과 <게르트루트>, <로스할데>,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서정적인 <크눌프>에 빠져 있었다. 이후 주인공이 불교적인 절대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싯다르타>, 20세기 문명을 총체적으로 비판한 <유리알 유희>까지 그야말로 헤세 마니아였다. <유리알 유희>는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책이었다.
     
슈트트가르트의 호텔에서 칼프를 거쳐 튀빙엔으로 가는 이틀의 여정은 검은숲을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칼프는 검은숲 한가운데 있는 도시다. 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를 보다 보면 이 숲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 숲의 이름이 검은숲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나무가 너무도 빽빽해서 숲 안에 있으면 사방이 어둡기 때문이라고 한다.
울창한 나무들로 빛이 들어오지 않아 한 낮에도 숲속엔 어둠이 내린다, 이 숲을 배경으로 탄생한 동화가 바로 헨젤과 그레텔이다. 어린 남매가 길을 잃었던 숲이 바로 이 검은숲이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그 숲에 마녀가 산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칼프로 가는 길에 만난 숲은 마녀가 지배하는 음침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끝없이 펼쳐진 숲은 오히려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마저 준다.
     
나는 수도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던 <수레바퀴 밑에서>의 주인공 한스 기벨라티의 길을 따라갔다.
     
-자그마한 여행가방을 들고 떠나가는 신학교 학생의 뒤로 교회와 문, 박공지붕, 그리고 탑들과 더불어 수도원이 그 모습을 감추고, 숲과 언덕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에 바덴의 국경 지대에 있는 비옥한 과수원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포르츠하임이 나타나고, 곧바로 검푸른 잣나무들이 늘어선 슈바르츠말트의 산이 나타났다. 수많은 계곡 사이로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작열하는 여름날의 태양 아래 더욱 푸르러 보이는 숲은 여느 때보다도 시원스러운 그림자를 한층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소년은 고향의 정취가 물씬한 풍경으로 바뀌어가는 창 밖을 내다보며 다시금 즐거운 기분에 젖어들었다.- 
<수레바퀴 밑에서> 중에서
  

칼프, 펜드로잉_ 고산


<수레바퀴 밑에서>를 보면 헤르만 헤세는 “교양 있는 척하면서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을 정도의 집에서 태어났다. <수레바퀴 밑에서>에 등장하는 한스, 즉 헤세는 “진지한 눈망울과 영리해 보이는 이마, 그리고 단정한 걸음걸이”를 가진 소년이었다. 작은 마을 사람들은 이 소년에게 저마다의 기대를 걸었다. 총명하면서도 겸손한 이 소년이 큰 도시의 좋은 학교로 진학해서 훌륭한 교사와 신부들로부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한스가 그랬던 것처럼 헤세는 그 생활을 견디지 목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소설에서 주인공 한스는 자살하지만 그는 예전의 그를 죽이고 새로운 자신의 인생을 만나게 된다.
    


칼프 니콜라우스 다리, 펜드로잉_고산



한스를 죽음으로 몰았던 근대 독일의 풍경은 <데미안>의 문화적 배경으로 다시 나타난다. 독일이 근대에 도착하는 방식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랐다. 독일은 유럽 사회가 산업혁명으로 요동칠 때도 황제 치하의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였다. 이 때문에 당시 독일 사람들은 교육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한국이 산업화 시기에 교육만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독일 사회도 오로지 ‘공부만이 살 길’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독일식 교양 교육은 오히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전쟁이었다. 
     
헤세도 독일이 1차 대전을 일으켰을 때 독일 민족주의 입장을 내세웠다. 그의 소설 <데미안을 보면 후반부에 데미안이 참전하며 유럽이라는 오래된 세계, 독일이라는 낡은 세계가 새로 태어나기 위하여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하기도 했다. 그러다 독일의 벨기에 침공 이후 전쟁 반대로 입장을 바꾸며 ‘친구여, 제발 멈추어라’는 글을 쓰기도 한다. 
    


니콜라우스 다리 예배당, 펜드로잉_고산



칼프 역시 이러한 근대 독일의 문화를 고스란히 안고 있던 곳이다. 검은숲이 절정에 달하다 어느 순간 칼프 이정표가 보였다. 여느 도시처럼 큰 교회나 성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리품을 전시한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없지만 헤세를 사랑하는 이들이 반드시 찾는 곳이다. 마을의 입구에 들어서자 나골트 강의 니콜라우스 다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헤세가 살던 시절에는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4개의 다리가 세워져 있다. 역 앞에 있는 마르크트 다리는 최근에 세운 것이고 헤세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니콜라우스 다리는 서쪽으로 50여 m 올라가야 한다. 선천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헤세의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함께한 이 다리를 건너면 칼프 시내로 들어가게 된다. 다리의 한 가운데는 헤르만 헤세의 동상이 서 있었다. 


니콜라우스 다리 위 헤르만 헤세 조각상, 펜드로잉_ 고산



10여 m 길이에 그리 넓지 않은 다리지만 한 천재 작가의 어릴 적 꿈과 낭만이 스며들어 그의 동상이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느낌을 받는다. 이 조각상 앞에서 대부분 관광객들은 기념촬영을 하고, 다리 난간에 앉아 그의 작품을 읽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