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겁이 나는
아무렇지 않아 지는 순간이 있다.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않은 순간
감정 자체가 처음부터 없는 사람인 것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
언뜻 보면 괜찮아 보이는 찰나
이토록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게
오히려 스스로도 겁이 나는 순간
지금은 화가 나는 게 맞는데
지금은 눈물이 흐르는 게 맞는데
그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고
이런 순간에 스스로가 무섭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 하는
내가 너무 겁이 난다.
다 놓아버린 것 같아서
다 놓아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면 정말 큰일인 거니까
그러면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거니까
내가 너한테 그런 감정이 들었다.
처음엔 화가 나고 서운한 게 맞았는데
이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네 존재자체가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앞에 있는 네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그렇게 의미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그동안 힘들어했던 모든 순간들이
쓸모없는 시간들이었다는 깨닫게 된 순간
그렇게 애틋하고 간절했던 너 조차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정말 아무렇지 않게 너를 지나칠 수 있다는 게
정말 아무렇지 않게 네가 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 버린 게
결국 너에 대한 내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