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나다라봉 Apr 03. 2024

육아휴직하면 뭐 할 거야?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3개월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할 거예요?"


 "아직 계획 없어요."라고 답해왔다. 육아를 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별 이유가 아닐 것 같아서 간단히 답하고 있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긴 하다. "아이 유치원 등원 하원 차량 태워 보내려고요.", "아이 하루 사이클 루틴 만들어주려고요." 그때마다 여럿 답변도 들었는데, "정말 잘 됐다!", "잘 생각했다. 그동안 너도 고생했는데, 좀 쉬어야지.", "좋겠다." 나를 걱정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함께 좋아했고, 좋겠다. 는 의미는 일에 지쳐가는 사람들도 꽤 많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물론, 근로자로서 휴직 3개월 이 시간이 무척이나 소중한 것을 알기에 평소 못한 것을 하고 싶었다. 해외 한 달 살기, 아이와 여행하기 등 찾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야 말로 내가 하고 싶은 거지 아이나 남편이 원하는 것은 아니더라. 육아환경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고 아이와 유대하는 시간을 더 값지게 만들기만 해도 성공적인 시간이다.


마음가짐을 바꾸기로 했다. '꼭 무언갈 계획하고 실행해야 내가 살아가는 이유일까?'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미래를 걱정할 시간에 지금의 행복을 즐기기로 결심했다. 그래야 진짜 이 시간이 소중해질 것 같았다. 그동안 얼마나 내가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는지 이제 와서 느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침에 함께 눈뜨고, 아침을 먹고, 아이와 유치원 갈 채비로 실랑이도 벌이다가 차량 시간에 맞추어 나간다. 버스 타고 가는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나도 한껏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한다. 아이를 보내고 날씨도 좋길래 아파트 단지 한 바퀴 돈다. 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무리 못한 일을 위해 노트북을 꺼내 집에 있는 모니터에 연결한다. 듀얼모니터가 생산성을 높여 참 좋다. 8시부터 10시까지 두 시간, 평상시라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무심코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시간인데,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시간 쪼개기의 효과와 중요성을 한번 더 깨닫는 느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마침 4월의 날씨는 나의 마음을 위로하듯 따뜻하다. 특히 날씨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좋은 날이면 20대 초반 돈을 모아 홀로 유럽여행을 떠났던 그때가 떠오른다. 푸르고 따뜻한 날씨 풍경이 나의 기억 속에 긍정 기억으로 남아있어 그 기운이 느껴지면 덩달아 좋다. 요즘 딱 그런 날, 꽃 피우는 계절이 몽글몽글 하다. 나의 육아휴직 3개월은 아이에게도 따뜻한 봄날의 기억을 전달해 주는 것, 그리고 남편에게도 운동할 시간을 주는 것, 나에게는 어딘가 얽매이지 말고 생각 많이 말고 실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결심했다고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보통 사진을 많이 찍는데, 날씨 만끽하느라 사진도 없다. 그 시간을 오롯이 잘 즐긴 것 같아서 좋다.


우리 아이가 그토록 타고싶었던 노란버스에 태워 보내기
매거진의 이전글 빈자리는 티가 나기 마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