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는 티가 나기 마련이다.
엄마의 부재를 메꾸려, 업무에 빈자리를 두었습니다.
아이 등하원 그리고 가족의 건강한 삶을 위해 육아휴직을 썼다. 그리고 업무를 싸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육아휴직이라고 하지만 간헐적으로 재택근무를 해야 할 상황이다.
육아휴직 전의 나의 모습은 아내로서, 엄마로서 보내는 시간이 무척 짧았다. 그동안 그 빈자리는 아이의 엄마바라기 효과로 여실히 느껴진다. 나는 아이 친구 엄마와는 왕래가 없었고 어린이집 선생님과도 최소한의 연락만 해온 사람이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의 역할에 많이 몰입했던 사람이다. 출퇴근시간, 집에 와서도 떠나지 않는 일에 신경이 곤두서있기도 했다.
육아휴직 1일 차인 오늘은 아침부터 아이의 기상, 등원 준비, 하원 픽업, 하원 놀이터, 저녁 준비, 씻기기, 재우기까지! 정말 오랜만에 할 수 있는 엄마 역할은 다 했다. 그동안 반쪽짜리 아니 반의 반쪽짜리 역할이었는데 그래도 집에 있으니 가능한 일이구나 싶다. 새삼 놀랍다.
정말 부지런히 여러 가지 일을 해내니, 몸도 무언가 가볍다. 날씨는 또 어찌나 좋은지, 온갖 에너지를 다 받고 있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시간대에 다니니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친다. 대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동안 오전 7 시대에 아이를 차로 등원, 오후 7 시대에 하원했으니 몰랐던 분위기다. 해가 지기 전 왁자지껄한 놀이터 풍경, 곳곳에는 킥보드와 자전거가 주차되어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주말이랑은 또 다른 활기찬 에너지가 더 느껴진다.
오늘 하루 비로소 아이와의 시간은 꽉 찼는데, 역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하루 만에 프로젝트에서의 나의 빈자리는 바로 드러난다. 존재감 없던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반증하는 거겠지만, 그동안 내가 맡았던 업무들이 하나하나 까발려지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수인계를 할 사람도 마땅치 않아서 집에서도 원격으로 업무를 보겠다고 이야기하고 나왔었는데... 아무래도 회사입장에서는 나의 프로젝트가 불안하기는 한가 보다. 울리는 업무 메신저가 신경 쓰인다. 여하튼 지금 휴직한 상황이라 뭔가 이상한 게 발견되면 누군가는 고군분투할 거고, 그 욕받이는 나겠지 싶다. 그럼에도 고마운 일이다. 내가 욕을 받을지언정 나의 일은 해결되고 있을 테니까. 욕먹는 일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그래,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내가 일해왔던 방식을 아주 객관적으로 볼 기회(?)이기도 하다. 내가 어디까지 공유를 했고, 안 했고 누구와 주로 이야기를 했고, 나는 무엇을 체크하고 있었는지 또는 놓쳤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뭐랄까. 마음이 한결 평온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라는 마음을 다진다. 문제가 드러났으면 해결하면 되고, 마음먹었으면 실행하면 된다. 그뿐이다. 아이에게 보이는 빈자리도, 업무에서 보이는 빈자리도 객관적으로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어제보단 오늘 더 나은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