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일과 육아 그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엄마가 떠오른다. '도대체 엄마는 우릴 어떻게 키운 걸까?'아빠도 물론, 하지만 당시 아빠는 바쁜 회사 일로 얼굴 보기 힘들었다.엄마는 어릴 땐 집에 계셨고 내가 초등학교 입학 즈음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일을했던 걸로 기억한다.
학창 시절엔 일하는 엄마를 원망한 적 없었는데, 오히려 아이를 낳고 복직을 앞두고 엄마가 원망스러운 적이 있었다. 참 못된 딸이다. 복직을 앞두고 '엄마가 아이 봐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마음이 굴뚝같았다. 누구는 근처에 엄마가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아이를 봐주고 있고, 친구 누구는 커리어 단절되면 안 된다고 친정엄마가 자처한 육아로 복직하기도 했단다. 친정 엄마 찬스로 일을 유지하는 친구들도 부러웠다.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들이 보이니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나의 상황이 괜스레 애처롭게 느껴졌다. 평생 일해온 엄마에게 그 화살이 갈 줄이야. 사실 나 조차도 그런 마음이 들 줄 몰랐다.
엄마의 20대는 나에겐 기억이 없고 그저 내가 좀 컷을 때 회사에 다녔던 것만 기억난다. 이제야 엄마의 20대가 궁금하다. 전해 들은 바로는 엄마는 간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서울 성모병원 첫 발령을 앞두고 언니를 낳았다고 했다. 그리고 포항으로 이사 가면서 자연스럽게 첫 직장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나라면 그때의 엄마 마음은 정말 속상했을 것 같은데, 이제야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렇게 엄마는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엄마는 학습지 교사로 일했는데 꽤 영업수완이 좋았던 모양이다. 엄마는 멋진 옷을 입고 다녔고 계절별로 새 옷을 사 입었다. 그때 엄마가 샀던 옷은 내가 성인이 되어 입고 다닐 만큼 잘 만들어진 옷들이었다. 그 당시 꽤 비쌌던 (안테나 달린) 거대한 휴대폰도 가지고 있었다. 언니와 나 그리고 어린 동생에게도 브랜드 옷을 사주기도 하고, 햄버거와 피자도 자주 먹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맥도널드에서 친구들 15명 정도 불러 생일파티를 했던 것이 지금도 강한기억으로남아있다.
그러던 엄마가 새로운 신도시에 이사 와서 어떤 일을 할까 찾았던 그 시기도 기억난다. 인천에서 경기도 시흥, 교통편도 좋지 않아 기존의 엄마 커뮤니티는 유지하지 못하고 새롭게 개척해야 했다. 아빠 직장은 그대로인데 엄마는 옮길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생각하면 우리 엄마 진짜 인싸네? (ㅎ)
그렇게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엄마는 지금의 직장을 만났다. 엄마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 40대가 되어 그 텃세 심하다던 간호사 사이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다. 경력은 하나도 없이 불혹의 나이 엄마는 갓 졸업한 20대, 30대와 일하게 되었다.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무척 힘들었을 것 같은데... 엄마는 한 해 한해를 버텼을 거다. 한창 딸들이 교육비가 많이 들 때이기도 했고 씀씀이도 적지 않았기에 아마도 생계유지를 위해 버텼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엄마는오랜 시간 엄마의 일을 하며 딸들도 대학 졸업하고 결혼하고 사위도 보고 할머니도 되었다. 막내딸 결혼을 앞두고 환갑이 지난 엄마는 여전히 현직 간호사다.
사실 엄마의 인생을 여기에서 글로 작성하기엔, 그저 딸의 관점이기도 하고 그 깊이를 다룰 순 없다. 그래서 이쯤으로 하고 지금의 나의 마음을 담아본다.
올해 4월이 엄마의 근속 20주년이란다. 겸사겸사 가족여행도준비하고 있다. 엄마는 마흔이 지난 나이에 다시 엄마의 일을 시작했고, 못다 이룬 꿈을 이루었다. 그 20년을 지켜온 과정이 그저 경이롭게 느껴진다. 나도 40살을 곧 앞두고 무언가 다시 시작하는 게 두렵고,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엄마를 보니 용기가 생긴다. 엄마가 우리 아이를 봐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일을 멋지게 지키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사실 아이를 봐주신다고 해도 그만큼의 만족이나 금전적 지원을 엄마한테 해줄 수도 없고, 그런다고 해도 내 마음이 편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저 엄마도움을 받고 싶은 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아야 할 때, 엄마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육아를 '엄마'가 꼭 해내야 할 필요도 없는 세상인데, 나조차도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을 갖기도 했다. 복직을 앞두고 회사대표와 면담할 때, 나의 엄마가 아이를 봐줄 수 없는지 물어봤던 질문이 신경 쓰였던 것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선 넘는 질문이다. 우리 엄마의 일과 커리어 그 만족감을 나의 복직을 위해 바꿀 수는 없다. 나의 일이 소중한 만큼 엄마의 일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환갑이 지난 엄마의 커리어를 응원한다. 정년까지 잘 마무리하고 훗날 또 재미있는 일들도 만들며 살아갈 엄마의 인생을 응원한다. 그 모습이 직장과 가정에서 고민하는 수많은 '엄마가 된 딸'들에게 영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