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하면서 느끼는 나의 두 얼굴. 난 참 회사에서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일 텐데 가정에선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에게도 그렇지 않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사람이다.
나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회사에서 울리는 알람에는 무척 빨리 대응한다. 마치 메신저계의 '파블로스의 개'인 것 같다. 그건 회사에서도 재택근무 중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웃긴 건 일반적인 연락에는 그렇게 대응하지 않는다는거다. 업무 알람에만유독 바로 확인하고 이모지로 반응한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즉각적인 대응과 확인이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조금 더 과거로 오르면 이 분야에서 충격적인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나의 첫 정규직 회사에서 있던 일이다.
당시 대표 포함 다섯 명 있는 회사에 다녔다. 그리고 열정 페이로 밤, 낮 할 것 없이 주말에도 일했던 시즌이다. 사내 메신저도 있는데 굳이 카톡 단체채팅방으로 업무를 주고받던 시기다. 입사한 지 1년 정도 되었을까?
대표로부터 한소리를 들었다. "카톡 좀 확인해라.", 몇 번은 "아, 네 확인할게요." 하고 보곤 했는데, 사실 업무 메신저 놔두고 카톡을 쓰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카톡 알람을 켜두고 있지 않아서, 회사 카톡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연락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오죽하면 가족들도 연락도 안되는데 핸드폰은 왜 갖고 다니냐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그날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사내 메신저로 메시지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카톡 알림을 켜두고 있진 않아서요. 채팅방 많아서 사실, 다른 알림이랑 겹치기도 하고요." 그랬더니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 대표의 말. "아, 그럼 친구들 다 지워버리면 되잖아?????" 할 말을 잃었다. 진심으로 그때도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했다. 이 사람이 미쳤나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 말이 오가고 역시나 메신저는 활용되지 않았다. 대표는 카톡이 편하다며 꿋꿋이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고, 나는 꾸역꾸역 열심히 대응했다. 그랬다. 그래서인지 그때부터 진동이 울리거나 벨소리만 들려도 긴장했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당시, 업무 알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다른 알람은 무음이거나 알림 받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 핸드폰의 진동이 울리면 99%는 업무 연락이었다. 밤, 주말에도 그랬으니까.
그때의 대응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니, 이제 와서 소름 돋는다. 지금의 회사는 주말이나 저녁시간엔 업무 연락이 거의 없어서 몰랐다. 지금은 일부의 시간만 일을 하니, 동료들이 일하는 시간에 내가 아이를 케어하는 시간과 겹칠 때가 있는데, 그 시간마다 내가 핸드폰을 본능적으로 집어 들고 답변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가 무엇을 하든, 내가 집에서 무얼 하고 있든 대응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남편이 항상 내게 이야기했던 부분인데, 이제야 조금 객관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오프라인에서 마주 앉아 대화하다가도 업무 카톡이 울리면 그거에만 몰입하고 있으니, 마치 회사에서는 얼굴은 안 보이지만 온라인에는 항상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 온라인 NPC 역할을 자처해서 하고 있으니, 현실의 모습은 그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빠져있는 사람이겠지 싶고...
여하튼, 과거의 기억은 그렇다 치고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생활을 하며 의식조차 못했다니, 현실을 소중히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속상한 일이다. 나의 하루 시간은 업무와 가정과 나의 심신을 휴식하게 할 시간 등 알차게 보낼 수 있는데, 몸과 정신이 한 곳에 매몰되어 따로따로 살아왔구나 싶다... 나의 시간 활용의 알맹이는 없고 긴장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 업무 외 시간은 알람이 울려도 핸드폰을 보지 말자. 의식적으로 보지 말자. 급한 연락이라면 전화가 오거나 연달아 알람이 울리겠지.라는 마음으로 내려두는 연습을 한다. 마음속으로 새겨본다. 책 한 권을 읽으며 울리는 알람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이 신경 쓰이는데, 보아하니 업무 알람도 있고, 중고마켓 알람도 있고 그렇다. 불필요한 알람은 더 과감히 알림 설정을 꺼두고, 업무 메신저도 방해금지 모드로 일부의 시간을 설정해 두었다. 그리고 남편의 카톡 알림만 활성화해두었다.
일하는 시간엔 물론 즉각 대응함으로써 재택근무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이건 시키지 않아도 잘 해내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회사에 신뢰는 확실히 준 것 같다. 그러니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일 하지 않는 시간은 오롯이 현실의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가족과의 시간 그리고 스스로의 시간도 포함이다. 눈앞에 보이지도 않는 그 이슈들에 대응하려고 노력하지 말자. 일이 조금 잘 못 되었다고 해도 다시 고치면 되고, 번복하면 된다. 그러니 그때그때 다 알고 대응하려고 하지 말자. 스스로 주문을 외우며 오늘의 글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