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3개월이 무슨 큰 변화를 만들어내냐고 하겠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고 의미 있는 시간이다. 나의 마음가짐과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킬 시간이다.
워킹맘 육아 스토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결론부터 이야기하는 글. 약 3년간의 워킹맘 생활은 두 번째 육아휴직을 기점으로 잠시휴직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의 삶에 대한 성찰을 지속하고 있다.
두 어른이 아이를 키우면서 함께 일을 한다는 건, 사실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타협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주변으로부터 배려도 받으면 좋고. 나도 3년 동안 배려를 받았다면, 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생활을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나의 욕심, 특히 인정 욕구.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피드백받으며 30여 년을 살아왔다. 그 과정을 차곡차곡 쌓여 일궈온 나의 '일'도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 중 하나이다. 회사에서의 소속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했고, 그 안에서 인정받고 내 역할을 견고히 하는데 주력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려고 했고, 주어진 일은 정말 나의 일인 것처럼, 진심으로 몰입했다. 이 사회에서,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선 이런 삶의 태도로 원활하게 살아가기 어렵다는 걸 느낀다. 내가 원하는 만큼 몰입할 수도 없고, 원하는 만큼 시간을 쓸 수 없다. 그 안에서 요리조리 잘 찾아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면 좋았겠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한쪽에 더 많이 치중된 사람이었다. '일'에 치우쳤다고 말하기보단, 그냥 나의 내면의 욕심에 치우쳤다고 봐야 맞다. 나의 기준을 바꿀 생각은 없고 그 변화에 맞설 용기도 없으면서, 나의 일과 많은 역할들을 잔뜩 붙잡고 있는 꼴이다.
가장 큰 착오였던 것은, '워킹맘'으로 복직은 할 거면서, 워킹맘이고 싶진 않았다는 것. 아이를 낳기 전과 똑같이 회사에서는 일만 잘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아이를 낳은 엄마이기 때문에, 또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서 받는 배려는 받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고집불통 같은 마음 가짐이다. 하루 일과 중 엄마로서 역할도 분명 있음에도, 회사에서는 워킹맘에서 '맘' 타이틀을 거의 잊은 채로 지냈다.
애초부터 아이의 일정은 아빠, 엄마의 회사 출근일정에 맞추어져 있었고, 아이는 그 시간에 양육기관에서 풀타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워킹맘을지속하면서 우리 가족을 위한판을 짜기 위해 노력했다기보다는, 그저 내가 속해있던 사회에 돌아가기 위해 나의 완전한 모습만 찾으려고 노력했다. 똑같이 8시간 아니 그 이상, 야근도 해야 하면 했고, 새벽에 일어나서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일을 잘 해내는 것, 물론 중요한 부분이고 사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여도 이런 개인의 욕심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이런 욕심을 지속하려면, 그렇게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육아를 조금 더 전담해 줄 사람이 있었어야 했고, 일에 몰입할 시간의 질도 확보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안전장치 없이 '워킹맘'으로 일에 몰입하는 만큼 나의 체력은 감소하고 정신적인 피로는 쌓여만 갔다.(사실 너무 당연하다. 나의 시간과 체력은 유한하니까) 일은 일대로 하고 집에서도 어쨌든 엄마니까 해야 하는 일을 해치우다시피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이럴 때 보면 쓸데없이 버티는 건 참 잘한다.) 다만 꾸역꾸역 지켜낸 줄만 알았던 나의 일과 육아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두 마리 다 놓치겠다 싶은 상황까지 치닫았다. 그리고 남편이라는 토끼까지 하면 세 마리. 모두...
주어진 상황을 꾸역꾸역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니고, 우리 가족에게 유리한 시간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한데 그걸 몰랐다. 애초에 복직하며 마음가짐부터가 오롯이 나를 찾으려고 했던 거니까, 그 기준이 과거에 머물러있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만들어내지 못한 거다.
워킹맘 3년 차에 깨달음을 얻은 건, 그래도 다행인 걸까. 아이가 조금이라도 어릴 때, 내가 아닌 우리 가족을 생각할 마음가짐을 갖게 되어 다행이다. 그동안 엄마, 아빠만 오롯이 육아를 전담했기에 애착은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뭐랄까. 진심으로 우리 가족에게, 아이에게 관심을 쏟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나는 '엄마'가 아닌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더 자세히 말하면 나의 내면의 욕구불만족에 더 집중한 사람이었으니까. 에너지라도 좋아서 파이팅 넘치는 엄마였으면 모를까. 그저 불만 투성이 어른이(어른+어린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