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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솔송 Nov 10. 2021

함께, 같이, 모여

시부모님


리오가 역아여서 39주에 제왕절개 스케줄이 잡혔었다. 코로나로 인해 리아를 병원에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리아를 봐주실 분이 필요했다. 이 소식을 들은 시부모님께서는 축복이가 태어나기 일주일 전으로 급하게 비행기 티켓 날짜를 바꾸셨다. 작년 리아 돌 때, 축하해주시기 위해서 미국을 오시기로 했었다.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었었다. 그러던 찰나에 리오가 태어난 것이다. 





남편은 아버님 어머님 마중하러 애틀랜타 공항으로 갔다. 

리아가 낯가림이 심해서 시부모님을 어색해하면 어떨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차고의 문이 올라가고 차가 도착했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차에 내리 셨다. 아버님은 처음으로 리아를 보셨다. 어머님께서는 리아 태어났을 때 한번 보시고, 커서는 처음 보시는 거였다. 시부모님 표정이 깜깜한 방에 촛불 하나가 환하게 타오르는 것처럼 밝아지셨다.

걱정과 달리 리아는 화상통화로 시부모님 얼굴도 보고, 목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낯설어하지 않았다.   




SUV 차량에서 짐이 쏟아져 나왔다. 케리어만 5개였다. 케리어 1개가 오버되어 추가 요금까지 내셨다. 케리어에는 시부모님께서 준비하신 건강식품과 리아 리오 책과 장난감들이 있었다. 그리고 친정엄마가 보내준 아이 옷들 가지와 된장, 고추장, 참기름, 다시마, 울릉도 미역 등이 있었다. 미국 한인마트에도 팔지만, 더 좋은 것들을 먹이고 싶으신 마음에 보내셨다. 손주들을 그리워하시는 마음들을 뭉게뭉게 모아 꺼내놓으셨다. 




평소 건강식품을 좋아하고 잘 먹다 보니, 시어머님께서는 흑염소즙을 생일 선물로 가지고 오셨다. 리아 때 먹고 회복이 빨라서 아껴먹었었는데 그 모습을 기억하시고 이번에 챙겨 오셨다.




두 분이 오신 덕분에 절간 같았던 집안은 잔칫집이 되었다. 북적북적하니 사람 사는 집 같았다. 아버님 어머님과 함께 밥을 해 먹고, 도란도란 앉아서 얘기를 하며 온기가 피어났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미국 제품들을 모아 선물로 드렸다. 


수제 함박스테이크


아버님 어머님께 어설픈 요리 솜씨를 뽐내보았다. 2% 부족한 맛이었지만, 맛있다고 하시며 다 드셨었다. 




제왕절개 하러 병원에 갔다. 코로나로 보호자는 1명밖에 출입할 수가 없었다. 남편과 리오와 병원에 있었다. 

그동안 리아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었다. 리아와는 한 번도 떨어져 잔적이 없었다. 혹시 울면 어떡하나? 병원으로 온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제왕절개를 해서 거동이 불편하다 보니 남편은 집에 가지를 못했다. 눈치가 빠른 리아는 2박 3일 동안 아빠 엄마를 찾지 않았다. 



차려주신 귀한 밥상



퇴원 후 집에서 먹는 한식은 참 맛있었다. 정성과 사랑이 들어가 있는 미역국과 나물과 고기들. 사실 매 끼니를 준비하는 것도 일이고 치우고 장보는 것도 큰일이다. 어머님께서 살림과 육아를 해주셔서 감사했다. 낭비하시는 것 없이 참 알뜰살뜰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에 리아는 포동포동 살이 쪄갔다. 2주만 계신다는 것을 간곡히 부탁드려서 5주 동안 계셨다. 두 분이 일을 하셔서 미국에 와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었다. 친정엄마는 동생 출산과 겹쳐 휴가 내는 게 어려워 대신 시부모님께서 오신 것이었다.




리오가 태어나고 나서 아버님 어머님의 자리는 엄청났다. 밤에 모유 수유하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 일 수였다. 아침에 안방에서 리오를 데리고 가서 수유시간 외에 리오를 봐주셨다. 덕분에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리아의 말동무도 해주시며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계속 놀아주셨다.




안방에서 낮잠을 자다가 거실로 나왔었다. 그때 어머님은 리오를 안은 체 점심 식사를 하고 계셨다. 잠투정하며 징징 우는 리오를 보시면서 웃고 계셨다. 어머님께서는 생활고로 남편이 생후 8개월 때 일을 하러 나가셨다고 하셨다. 그때 아들을 내손으로  더 많이 못 키워 아쉽다고 하셨다. 아쉬운 마음들을 리아와 리오에게 쏟으셨다. 




어머님께서는 상대방에게 맞춰주시는 분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시면 먼저 물어봐주셨다. 실수나 부족한 부분에 있어서는 잘 알려주셨다. 5주가 아닌 더 계셨으면 하는 욕심까지 생겨났었다. 자영업을 하셔서 미국에 계실수록 손해이셨기에 더는 부탁드리기가 어려웠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리아가 짜증을 내도 그저 웃으셨다. 아버님께서는 싱크대며 세면대, 집의 고장 난 부분들을 고쳐주셨다. 리아의 침대 조립과 서랍장 조립까지 해주셨다. 남편 혼자 했었으면 애먹을 거라며, 아버지와 함께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손주를 위한 아버님의 흔적들.




아버님께서 리아 리오 머리 부딪힐 까 봐 집안 곳곳에 스티로폼을 붙여주셨다. 에어컨 바람이 소파에 바로 떨어져 감기 걸릴까 봐 에이포 용지까지 붙여주셨다. 손주들을 향한 아버님의 마음이 곳곳에 묻어있다. 




한날 시부모님과 리아와 남편이 공원 산책을 갔다가 평소보다 늦게 들어왔다. 어제 장 보는데 수박을 깜빡하셨다면서 마트에 들려서 수박을 사 가지고 오셨다.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수박이라는 것을 아시고, 냉장고에서 떨어지지 않게 수박을 채워 놓아주셨다. 




시부모님께 감사의 선물로 진공청소기를 선물드렸다. 괜찮다며 세 번 거절하시고 난 뒤에서야 받으셨다.

 



리오가 태어난 지 32일 되던 날, 한국으로 돌아가실 날이었다. 잘 있으라며 손 흔드시는 모습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멀리까지 와주신 고마움과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이 실타래처럼 엉켜있다가 눈물로 쏟아져 나왔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이 아직은 어렵다. 




어머님께서는 돌아가시고 나서 자가격리 기간 중 1주일 정도 크게 아프셨다. 아버님께서는 눈에 염증이 생겨서 병원에 가려하셨지만 자가격리 기간이어서 가실 수가 없으셨다. 그 말이 맞았다. 손주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 




낯가림이 심한 리아는 유일하게 할아버지 댁에 가자고 하면 좋다고 얘기한다. 

리오 덕분에 뵌 시부모님의 사랑을 리아는 기억하고 있다. 

리오가 어려서 당장 한국을 가는 게 어렵겠지만, 강건하게 잘 계실 거라 희망한다. 




날씨가 추워졌다. 애틀랜타와 날씨가 비슷한 한국도 추워졌을 것이다. 저녁에 안부인사를 드려야겠다. 

오늘도 고맙고 감사한 사랑의 빚을 지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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