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솔송 Oct 31. 2021

내 인생의 나이테

제왕절개

30주에 알게 된 축복이의 역아 사실. 뱃속의 아기 머리가 자궁 쪽으로 돌아 아야 되는데 돌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없이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다. 





첫째 때는 자연분만을 했어서 축복이도 당연할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당황스러웠다. 처음으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여서 더 두려웠다. 수영장에 물이 얕은 줄 알고 들어갔었는데, 막상 발이 닿지 않아 공포심에 허우적거리다가 물에 빠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38주까지 축복이는 돌지 않았고, 39주 차에 제왕절개 스케줄이 잡혔다. 새벽 5시까지 병원 도착이었다. 집에서 새벽 3시에 나갔었다. 깜깜한 밤사이에 보름달이 보였다. 밝게 빛나는 달은 포근하게 세상을 감싸주었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이렇게 잘 될 거라고 되새이고 되네였다.






한산했던 새벽녘이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수술 준비가 시작되었다. 주사를 맞고 소변줄을 꼽고, 수술부위 제모를 했다. 병원에서 준 양말을 신고 간호사의 부축을 받아 수술실로 이동했다. 하얗게 질려버린 수술대에 누웠다. 모든 것이 창백하고 차가웠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몸이 저절로 떨렸다. 호흡을 가다듬고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수전증 환자처럼 계속 떨었다.




미국에서의 제왕절개는 하반신만 마취였다. 의식이 또렷한 가운데 수술이 진행된다. 불현듯 수술이 잘 못 되면 어떡하나? 마취가 안돼서 느껴지면 어떡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남편은 두려움이 많아서 애초에 들어가지 않는 걸로 합의를 봤었다. 막상 혼자 들어가 보니 후회스러웠다. 함께 있었으면, 수술실이 쌀쌀하게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다. 




자궁 속에서 왔다 갔다 당기는 느낌이 났다. 리오가 태어났다. 첫째 리아는 머리숱이 아예 없어서 그런지 머리숱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머리카락이 닭벼슬 머리였다. 옆머리는 붙어있고 윗머리가 잔디처럼 서있는 모양이 귀여웠다. 3.75kg으로 태어난 덕분에 간호사들이 한결같이 Big boy이라고 했다. 





손가락 발가락 모든 게 정상이었다. 삶을 움켜쥐고 있는 축복이가 무사히 잘 태어나서 감사했다. 

제왕절개 후의 첫날은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소변줄이 꼽혀있기 때문에 맘 편하게 침대에 누워있었다. 





병원에서는 미국식으로 밥이 나왔다. 스테이크, 스파게티, 프렌치토스트. 디저트는 치즈케이크.



제왕절개 후 소변줄을 빼고 큰 볼일을 보던 날. 몸을 돌려서 닦는데 근육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절단되어 있는 근육들이 새로 만들어 지기 위한 아우성이었다. 너무 아파서 순간 남편한테 닦아달라고 부탁을 할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근육들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다. 




제왕절개 2박 3일 후 집에 왔다. 병원비가 비싸 더 있기가 부담스러웠다.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진통제가 혹시 아이에게 좋지 않을까 봐 일부러 줄여서 먹었다.




집에서의 첫날은 침대 적응이 필요했다. 일반 침대이다 보니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게 고역이었다. 침대에 팔꿈치를 집어 상체를 들어 올렸다. 늘어난 테이프처럼, 천천히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올라오면 아픔의 눈물과 함께 찌릿한 짜증, 화가 밀려오는 건 덤이다.




밤에 리오가 배고프다고 울면, 바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옆에서 먼저 일어나 축복이의 기저귀를 갈았다. 그다음 부축해서 일으켜 세워주었다. 수면시간이 유리 파편처럼 조각나버리면, 고문이 된다는 사실을 남편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밤중 수유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서 감사했다.   



움직일 때마다  약간의 찌릿찌릿하니 수술부위에서 통증을 내보낸다. 술부위는 배꼽에서 13cm 밑에 가로선으로 그어져 있다. 조커의 찢어진 입이 내 몸에 문신처럼 남아있다. 그 부분은 녹는 실로 꿰매져 있다. 



제왕절개는 후불제라는 말에 깊은 공감을 한다. 배 근육들이 절단되어 움직임에 고통이라는 값을 지불했다. 새로운 몸의 변화를 익혀야 가며 육아를 하고 있다. 




제왕절개이던, 자연출산이던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출산은 말 그대로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제일 잘 한일이 리아와 리오를 낳은 일이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내 인생에 두 개의 나이테를 만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개의 심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