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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Apr 10. 2019

인사

2019.4.5.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OOO 씨를 만났는데, 네가 몇 년 차인지 물어보더라.


  내린 커피를 종이컵에 따라서 자리에 돌아와 앉자마자 선배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전했다. OOO 씨가 누구지?


  그래서 5년 차라고 했어.
너랑 인사 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고 그러던데,
다음에 마주치면 인사라도 해.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이라면 회사 사람일 텐데. 누구일까 싶어 사내 구성원 검색을 해 봤다. 이런 저런 업무로 여러 가지 회의체가 생겼는데 거기에 속한 참석자 중 한 명이었다.


  별 생각 없이 알겠다고 대답을 해놓고 나니 스멀스멀 궁금증이 생겼다. 두 사람이 마주쳐서 왜 그 자리에 없는 나를 소재 삼았을까. 정말 나와 인사를 해보고 싶어서? 예기치 못하게 마주쳤는데 딱히 나눌 말이 없어서? 그러면 연차는 굳이 왜 물어봤을까. 아니, 연차를 왜 먼저 물어봤을까.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선배가 나에게 와서 말을 전했다. 왜 걔는 인사를 안 하냐고. 대충 누구인지 감이 왔었지만 그러고 나니 더욱 의아해졌다. 나는 그 사람과 일을 같이 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딱히 마주친 일도 없었다. 물론 내가 안면인식장애가 심해서 뻔히 눈앞에 지나가는데 못 알아봤을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드는 생각은 그렇게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고 싶으면 먼저 알아본 쪽이 먼저 인사를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것이다. 꼭 그렇게 나의 직장 ‘상사’에게 이야기를 해서 내 귀에 돌아 들어오게 만들고 싶었을까. 왜? 무엇을 위해서? 내가 너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나에게 예의를 잘 차려라? (죄송하게도 바라시는 만큼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아요.)


  엄마는 어린 나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라고 가르쳤다. 당시 행인이 자기를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미치광이들에 관한 뉴스가 많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엄마 말을 약 30년 간 잘 들어온 나는 지금도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을 잘 못 쳐다본다. 안면인식장애까지 심해서 한두 번 본 사람은 거의 기억을 못한다. 그러다보니 ‘주위 사람 신경 안 쓰는 싸가지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주변을 가득 채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나는 ‘인사’라는 문제 하나 갖고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다. 어쩌다 누군가와 인상이 비슷한 사람이 지나갈 때 혹시 아는 사람인데 내가 무시하고 지나가는 거 아닌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안녕하세요” 한 뒤 이상한 눈초리를 받는 일도 일상다반사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왜 먼저 인사를 안 하지? 본인은 인사를 먼저 하기 싫은데 상대는 꼭 자기에게 먼저 인사 해 주기를 바라는 건 무슨 심보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뜯어보면서 인사를 못 받아서 혼자 기분 나빠 하는 거 보다 그냥 나처럼 아무도 안 보고 지나가는 게 백 번 마음 편하겠다. 그런 거 말고도 신경 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다들 왜들 그러고 사세요. 나랑 인사 한 번 해 보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아주 영광굴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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