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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Mar 05. 2020

코로나 시대의 단상

2020.2.27.

1. 좁은 엘리베이터에 그득그득 들어 찬 사람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정적이 돌자 마스크를 채 뚫고 나오지 못한 밭은 숨이 요상망측한 소리들을 내며 사방에 꽉 찬다. 그 소리가 웃겨서 마스크 안에서 좀 웃었다.

2. 출퇴근길에 시간을 보내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바로 어떤 일회용 마스크 디자인이 예쁜지 찾아 보는 거다. 가운데가 뾰족하고 날카롭게 날이 선 마스크는 조금 오리같아 보인다. 어떤 마스크는 약간 속이 과하게 들어 찬 서양식 핫도그 같다. 너무 작아서 얼굴 위에 붙은 딱지처럼 생긴 것도 있다. 이렇게 많은 업체가 마스크를 찍어내고 있었다니. 그런데도 마스크가 이렇게 부족하다니.

3. 토마스는 참 내 말을 잘 듣는다. 안 듣는 것 같은데도 결과적으로는 잘 듣는다. 코로나 바이러스 종식을 섣불리 떠들고 사람들의 경계심도 풀려가던 즈음에 토마스는 "다른 사람들이 다 마스크를 써서 나는 안 써도 된다"는 개같은 논리를 펼쳤다. 내가 마스크 쓰지 않은 채로는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하자 투덜거리면서 일본산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출퇴근길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주 고급져 보이고 가벼워 보이는 그런 디자인이었다. 그딴 마스크는 예쁘기만 하고 필터는 구릴 거 같아서 집에 있던 마스크 다섯 개를 챙겨 줬다. 필요 없다고 투덜거리더니 그 다음에 찍어 보내는 셀피들에 그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4. 토마스에게 마스크 예찬론을 펼치던 나는 결국 마스크 때문에 접촉성 피부염에 걸렸다. 마스크만 끼면 불특정 다수가 모인 곳에서도 마음껏 입 모양을 놀릴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며 바이러스로부터도 안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대체 왜 안 쓰냐고 의아해 했는데, 너무 많이 쓰다보니 얼굴이 맛이 가버렸다. 어느 날 두 볼에 두드러기가 나더니 시뻘개졌고 지금은 무슨 촌에서 갓 상경한 사람마냥 못생겨졌다. 가렵고 따가운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그래서 그렇게 예찬하던 일회용 kf 마스크를 못 쓴다. 다시 면 마스크로 회귀했다.

5. 다른 사람들은 진짜 자기 꿈을 찾아 가고 있는데 나만 이상한 데로 돌아가는 것 같다. 지금은 한글 2002 버전으로 열 장 짜리 보고서를 몇 시간 만에 뚝딱 만들게 되었지만, 이건 내가 하고 싶던 게 아니다. 이미 꽤 많이 앞서 나간 것 같은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다들 kf 마스크 쓰고 든든하게 준비돼 있는데 나만 면 마스크 쓰고 속으로는 벌겋게 곪은 얼굴을 숨기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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