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치마를 입지 않느냐 물으신다면
2020.5.6
나는 언젠가부터 다리를 무릎 언저리까지 내놓는 길이의 옷은 절대 입지 않는다.
물론 하루걸러 하루 꼴로 허벅지 중간까지도 오지 않는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엔 교복이 아예 치마였으니 매일 그걸 입고도 체육복 입은 것 마냥 편하기도 했었다.
짧은 옷이 싫은 것은 아니다. 워낙에 옷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지라 예쁜 옷을 보면 꼭 한 번 만지작거리지만 길이가 종아리 위로만 올라와도 큰 아쉬움을 접고 내려놓는다. 그 옷을 입었을 때 불편해질 내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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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맘 때 같은 날씨였다. 갑자기 따뜻해 진 덕에 들뜬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 근처를 벗어나 놀러가기로 했다. 2호선 신림역에서 함께 지하철을 탄 친구는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고 나는 그때 당시 굉장히 좋아했던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뒤에 서서 은근슬쩍 밀착해 오던 무게와, 서 있던 내 앞 빈자리에 앉는 척하면서 일부러 스치던 팔, 앞에 앉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은 뒤 맨다리에 머무르던 시선과, 자리를 양보하는 척 하면서 대놓고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지던 손이 아직도 전부 생생하다.
어리고 당황했던 우리는 제대로 항의 한 번 하지 못하고 그저 자리를 피해 문가로 도망쳤다. 그 새끼는 구석진 곳까지 따라와서 이번엔 친구를 추행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도망치듯 내렸다. 환한 대낮에, 주위에 보는 사람도 많았던 공공장소에서 일어난 일에 따뜻한 날에도 온 몸이 떨렸다. 그 미니스커트는 내가 워낙 좋아하던 것이어서 색깔별로 여러 벌 갖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 죄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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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일어난 건 그 옷 때문이 아니다. 그 옷을 입은 내 잘못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이후로 짧은 옷을, 특히 다리가 많이 보이는 길이의 치마를 입을라치면 온 신경이 다리에 쏠려 표정도 행동도 어색해진다. 괜히 주위 사람들을 경계하게 된다. 내 기쁨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더 신경 쓰며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의 시선 강박증은 더 확장돼서 누군가가 치마를 입고 있으면 그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내가 대신 단속하는 수준까지 다다랐다. (오랜 기간 관찰하다보면 실제로 불순한 시선들을 많이 목격하게 되는데, 정말 가서 다들 때려주고 싶다.)
불편한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다시는 치마를 입지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그럼에도 예쁜 옷 입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어제도 오랜만에 펜슬 스커트를 꺼내 입었다가 기분을 잡쳐서 새 청바지를 사 입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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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에도 긴 바지를 고수하다보니 왜 치마를 입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 곧 이 질문이 물밀 듯 쏟아질 계절이다. 그냥 긴 바지가 편해서라고 말하고 있는데(실제로 긴 바지가 좋기도 하고.)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하면 옷 속 내 다리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 어이없고 못난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 그걸 설명하느라 좋지 않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짧은 옷을 입어도, 긴 옷을 입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고통 받는 내 다리도 참 불쌍하다.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내 다리를 대놓고 상상해대는 무례한 사람에게 아무 말 없이 그냥 이 글을 턱 하고 내 보이고 싶다.
20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