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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Oct 27. 2020

나는 별로인 사람이었다

2020.10.27

 6년 가까이 기자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인터뷰라는 명목으로 몇 시간을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은 대체 나와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기자 말고 다른 무언가로 살고 있었더라면 결코 접점이 없었을 사람들이다. 그들과 내가 서로 다른 인생을 흘러오다가 예상 못 한 어딘가에서 기적처럼 만난 거라 생각하면, 내가 그렇게 괴로워하던 기자 일을 6년이나 한 것도 다 서로 만나기 위한 운명이고 인연이었구나 여기게 된다.     


 수많은 취재원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일’보다 더 깊숙한 무언가를 건드린 사람들이다. 아직도 연락이 닿는 고마운 사람들도 남은 반면, 차마 다시 꺼내 보기 힘든 감정으로 남은 사람들도 있다.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애써 모르는 척하고 살고 있지만,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그들은 일개 기자였던 나보다 훨씬 유명하고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티비에서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요 며칠 티비쇼를 보다가 흠칫 놀랐다. 어떤 연예인의 집에서, 또 다른 연예인의 옷에서, 내가 가장 미안하고 부끄러운 어떤 취재원의 작품을 맞닥뜨렸다. 내가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에도 이름났던 사람이니 비단 어제오늘 노출된 게 아니겠지만, 이상하게 요즘 하루걸러 하루꼴로 눈에 띈다. 잊어버릴 즈음 나타나서 나더러 계속 기억하며 미안해하라고 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과는 첫 만남부터도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는 그 사람의 작업실 한가운데 놓인 정사각형 테이블에서 이뤄졌다. 나는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펴고 앉아 미묘하게 비스듬히 놓인 테이블을 공간과 평행하도록 고쳐 놨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긴장을 풀면서 인터뷰 준비를 마쳤는데 분명 바로 놓았던 테이블이 다시 비뚤어져 있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다시 테이블을 옮겼다. 조금 뒤, 이상하게도 테이블은 다시 비스듬하게 놓여 있었다. 테이블이 꽤 무거웠던 탓에 끙끙대며 다시 평행을 맞췄더니 맞은편에 앉은 그 사람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웃으며 테이블 옮기는 걸 도와줬다. 테이블은 일부러 ‘느낌 있게’ 조금 비스듬히 놓여 있던 것인데 그게 신경이 쓰였던 나는 자꾸만 테이블을 정직하게 옮기고 있었고 그 사람은 그걸 의아해하며 계속 테이블을 비뚤게 고쳐 놓고 있었던 거였다.     


 질문과 답변은 무난하게 오갔다. 사실 갖고 갔던 기대에 못 미칠 만큼 평균적인 인터뷰였다. 늘 그렇듯 “기사는 언제 나갈지 전 정확하게 몰라요” 하고 나오는데, 그 사람이 곧 식사를 한 번 하자고 했다. 인사치레려니 생각했는데 정말로 연락이 왔다. 퇴근 후에 회사 근처에서 와인을 마셨다. 평범하고 올드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졌다. 나이, 학교, 관심사, 심지어 혈액형까지. 식사가 다 끝나갈 무렵 그 사람은 곧 해외 출장을 가야 하니 갔다 와서도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다 싫었다. 거절하기도 애매한 약속이었던데다 출입처의 유명인사를 개인적으로 알아놓으면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나간 자리였지만, 정작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불만은 최고조에 달해 있을 때였다. 절대적 기준에서는 젊지만, 상대적 기준으로는 많던 그 사람의 나이는, 차마 다 극복하지 못한 지난 연애의 악몽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뤄놓은 게 많아서 잃을 것도 많은 사람에게 다시 마음 주고 싶지 않았다. 데려다준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안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어 담배 한 대를 빌려주더니 혼자 피우면 외롭다며 자기도 옆에 서서 같이 담배를 피워줬다.     


 그 뒤로 나는 그 사람을 방치했다. 핑계를 둘러대거나 거절의 뜻이라도 표현해야 했는데, 그토록 최악이라는 ‘안읽씹’을 수도 없이 해버렸다. 그냥 다 피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한 사람의 감정과 노력을 깡그리 무시해버린 것이다. 한참 뒤, 급히 기사 마감을 하려고 들어간 스타벅스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나를 모르는 척했을 텐데, 그 사람은 다 없었던 일인 양 환하게 웃으며 처음 만났을 때처럼 다가왔다. 참 이상한 건 나도 속없이 그 사람이 반가웠다는 거다. 그 사람은 내 반응을 보고 다시 식사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은 바빠서 미안하다며, 곧 연락하겠다면서 달려나가는 그 사람을 보고 나는 반가운 티를 숨기지 못한 게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나는 예전의 실수를 또다시 했다. 끝까지 지질하고 예의 없던 나지만, 그 사람은 그런 나한테도 끝까지 정중했다. 마지막 연락은 자기가 오래 준비한 쇼가 있으니 참석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는 긴 메시지였다. 내가 그 메시지를 열어 볼 용기가 난 것은 메시지를 받은 지 석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고, 나는 석 달을 핑계로 또 그 사람의 노력을 뭉개버렸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마냥 철 늦은 중2병 같은 걸 앓고 있었고, 그땐 그게 뭔지 몰랐던 공황장애 증상을 이겨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누군가 나한테 순수한 감정을 표시하는 게 버겁고 두렵게 느껴질 만큼 나는 별로인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나쁘게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이걸 쓰고 있다. 그 사람에게 직접 말할 용기는 없으면서 간접적으로라도 면죄부를 얻고 싶다는 또 다른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가능하다면 사실 그때 나는 멍청이 같이 도망간 거라고, 당신을 무시해도 그만인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던 게 아니라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나는 그런 감사한 감정을 받을 자격이 없는 모자란 사람이었을 뿐이었으니 너무 불쾌하지 않았기를. 나는 고마운 인연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 사람의 소식이 문득 들려올 때마다 부끄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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