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맛있는 걸 먹고싶다는 나의 미味적 쾌락이 다른 생명이 당하는 홀로코스트보다 소중할 리는 없다.
동물은 불쌍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걸 못 먹게 되니까 그냥 이대로 무감각하게 살겠다는 멍청한 소리를 하고 살았다. 고문당하고 항생제와 병균으로 오염된 남의 사체를 먹으면서 그게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줄 거라 믿었다. (지금의 공장형 축산 시스템에서 '건강한' 육류와 해산물은 생산될 수 없다.)
어떻게 태어나고 길러지고 죽었는지 알 수 없는(알고 싶지 않았던) 동물을 맛있다고 감탄하며 꾸역꾸역 집어넣었던 내 소화기관을 새걸로 갈아 끼우고 싶어졌다. 옷장과 신발장에 남아 있는 가죽 가방과 지갑, 구두, 털옷은 삼십 년을 무지했던 내 멍청함의 민낯이다.
2014년 쯤 몇 달 채식을 했었다. 문득 동물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고기를 먹지 않아 보려 한다고 하자 "그렇게 해서 사회생활 어떻게 하냐"(실제로 제약이 컸다)는 우려 섞인 발언, "갑자기 이제 와서 동물이 불쌍해지냐"는 조롱성 발언, "고기를 안 먹으면 건강을 해친다"는 근거 없는 발언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나는 아는 게 없고 미안한 감정만으로 채식을 시작한지라 그 땐 그저 멋쩍게 웃고 넘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 발언들 앞에 이 책을 선물했어야 하는데. 동물을 먹고 먹지 않는 문제는 단순히 식食취향을 바꾸는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 환경 오염, 전염병과 기아 등 인류 전체의 생명에까지도 연결된 큰 고리라는 걸 몰랐다. 2011년에 나온 책을 10년이나 미루다 이제 읽은 내 잘못이다.
인간이 저지른 범죄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공장형 축산 시스템이라고 한 사피엔스를 읽으면서부터 줄곧 의문스러웠다. 아우슈비츠, 731부대, 위안부, 흑인 노예선의 만행은 과거의 흑역사가 아니다.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져 여전히 생체실험, 강간, 고문, 학대, 착취를 눈도 깜짝않고 저지르는 인간이 어떻게 매 주말마다 예배당엘 가서 천국에 보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 하고 있을까. 천국을 믿는 건 인간 밖에 없는데 정작 천국에 못 갈 것도 인간 밖에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