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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Apr 10. 2019

노량진 육교

2015.6.19. - 2019.4.10

마와리(まわり.경찰서 순회 취재)를 돌던 겨울이었다.


어느 새벽에 누군가가 노량진역 5번 플랫폼 아래로 뛰어내렸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칼바람이 지나는 노량진 육교 위를 혼자 달려가다가 문득 무서워졌다. 혹시 모를 단독 기사를 쓰려면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도 동작경찰서로 되돌아가 자고 있는 타사 동기를 깨웠다.


“오빠, 방금 누가 요 앞에서 뛰어내렸다는 신고를 알아냈는데 너무 무서워서 혼자 못 가겠어. 같이 가자.”


너무 추워서 입에서 저절로 욕이 나왔다. 이렇게 추운 날 자살은 왜 하냐고 투덜거렸다. 나와 내 동기는 우리 걸음때문에 흔들리는 노량진 육교를 미친듯이 헤맸다. 육교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캄캄한 철로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모를 가시밭처럼 보였다. 벌써 사고 처리가 끝났는지 뛰어내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소방서에 전화를 해서 사람이 실려간 병원을 알아냈다. 택시를 잡아타고 노량진역에서 멀지 않은 병원 응급실에 급히 도착했다. 응급실 앞에 서 있는 병원 보안요원들은 기자를 귀신같이 알아봤지만, 어린 여자인 나는 조금의 표정 연기만 하면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날도 나는 마치 가족이 실려온 응급실에 정신없이 달려온 학생인 것처럼 연기를 하며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 3시가 지난 시각이었지만 응급실은 낮처럼 붐볐다. 고통스러운 신음소리, 바쁘게 움직이고 고함을 치는 의사와 간호사, 울고 있는 사람들. 빈 병상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단번에 노량진역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누구인지 찾을 수 있었다.


천명관의 고래에는 거대한 몸을 가진 춘희가 나온다. 세상 온갖 것을 모두 짊어지고 태어난 것 같다던 춘희의 몸은 소설을 읽는 내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뭍으로 끌려나온 해파리처럼 침대 위에 널부러져 있는 그 사람을 본 순간 춘희가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 여덟 정도 됐었나. F라고 쓰인 푯말이 없었다면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때 의사가 춘희의 하반신을 덮고 있던 얇은 천을 홱 하고 젖혔다. 춘희의 양쪽 발목은 모두 잘려있었다. 잃어버린 발은 끝내 찾지 못했는지 댕강한 발목 안으로 흰 뼈와 피흘리는 살덩어리가 그대로 보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에 얼어붙은 나를 보고 보안요원들은 내가 불청객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다며 팔뚝을 잡고 끌어내는데도 뭐라고 말 한 마디 못하고 멍하니 쫓겨났다.


타사 동기는 나에게 물었다.


“잘린 발목이 왼쪽이었어 오른쪽이었어?”


일련의 사건을 라인 일진 선배에게 보고하자 잘린 발목이 어느 쪽이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더니 직접 가서 봤는데 방향도 구분하지 못하느냐고 깼더랬다. “양쪽 다 없었어” 하자 동기는 “아니야, 한 쪽은 있었어”라고 말했다. 이십대 젊디 젊은 사람이 더 이상 살고싶지 않아서 아무도 못 볼 새벽에 육교에서 몸을 던졌는데 오른쪽 발목이 없든 왼쪽 발목이 없든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진짜 중요한 건 죽고 싶었을 그 사람은 그냥 발만 잃고 다시 살아났을 거라는 사실인데.


노량진 육교 위로 돌아온 나는 혹시 춘희의 발목이 덩그러니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 계속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동이 트고 이제야 철로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5번 플랫폼으로 첫 열차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오늘을 시작했다. 밀고 밀치면서 열차를 타고 내렸다.


동작서를 관할하는 관악 라인에 있으면 매일 새벽마다 변사 신고가 들어왔다. 2건 중에 1 건은 노량진의 일이었다. 문을 청테이프로 밀봉한 뒤 번개탄을 피우거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원룸 안에서 목을 맸다가 일주일이나 지난 뒤에 발견되거나. 한 걸음만 내딛어도 위태롭게 출렁거리던 노량진 육교는 외로움을 못 견디고 죽어가는 고시생들 같았다. 삭아가는 육교 위에 올라서면 저 멀리 화려한 여의도가 보였던 것 같은데.


관악라인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량진 육교 철거 뉴스를 들었다. 노량진 사람들이 걱정됐다. 다들 괜찮을까. 대신 흔들려주던 육교가 없어졌는데 다들 잘 버티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만 하고 한 번도 육교 없는 노량진역에 가 보지 않았다.


노량진역 육교. 위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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