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만 품은 것은 언제고 사라진다
우리 엄마는 가끔 사위를 앞에 두고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곤 한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결혼 전까지 엄마가 격은 나에 대해 추억에 잠겨 두서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중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애가 작가나 화가 같은 예술가가 될 줄 알았잖아."
초등학교 때 학부모 참관수업에 가면 교실 뒤편에 항상 나의 그림이 걸려있곤 했단다. 또 한 번은 담임선생님 면담에서 내가 쓴 글을 함께 보며 엄청나게 감탄했던 기억도 있다고 했다. 물론 기억력이 매우 좋지 않은 나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내 초등학교 일기장에 '화가'가 되고 싶다고 썼던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칭찬을 들었는지(이것도 기억이 안 난다.) 특출 나게 잘 그린 것도 아닌데 막연하게 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 저학년 때는 허리가 잘록하고 우아한 드레스를 그렸고 고학년에는 수채화의 매력에 빠져 물통과 붓을 항상 챙겨 다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미술시간은 줄고 국. 영. 수를 반복하며 자연스레 화가의 꿈에서 멀어졌다.
화가의 꿈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바뀌었고 그러려면 입시미술을 해야 했다. 집안 형편에 고민하던 차에 건축가를 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하겠다는 호기로 '이과'를 선택했고 수학을 못했던 나는 패망했다. 어떻게라도 비슷한 축에 들어보고자 실기가 필요 없는 '예대'를 찾아 입학했고 웹디자인을 배울 수 있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화가보다는 꽤나 현실적인 진로였을지 모른다. 미술학원을 전문적으로 다니지는 않았지만 학창 시절 나는 틈틈이 집 앞 놀이터에 앉아 스케치를 하곤 했다. 직장인이 되고는 원데이 클래스로 캘리그래피나, 수채화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붓은커녕 연필로도 무언가를 그릴 재능을 잃어버린 나는 이제 그림 그리기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취미활동으로도 흥미가 없다. 언제고 어릴 적 칭찬의 힘을 잃지 않고 계속 그 꿈을 품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관심은 형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언제고 사라진다. 한때는 진로를 고민할 만큼의 큰 꿈도 행동으로 지속하지 않으면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