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미워해서 미안해'
나는 3년 동안 비밀연애를 했다. 그것도 사내 연애로 말이다.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 셋은 원수 아니면 절친일 가능성이 높다. 일을 정말 많이 같이 하기 때문에 교류가 많다. 세 명이 함께 일했던 1년 반 동안 서로 '미친놈'이라고 욕하던 우리는 기획자가 보직이동을 하면서 서로 의지하게 되었고, 어쩌다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회의도 많이 하고 같이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둘이 연인 사이라고 하면 분명 말이 많을 것이기에 우리는 연애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새로운 기획자가 입사해 다시 세 명의 구도로 일하게 되었지만 그 기획자가 일하는데 불편하지 않게 우리 사이를 털어놓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일이 안 되려면 뒤로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그랬나? 하필 남자 친구와 저 멀리 '전주'로 여행을 간 날 새로 입사한 기획자도 전주 여행 중이었고 우리 둘의 연애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알려져 버렸다. 그 넓은 대한민국 땅에, 근무지도 서울인 우리가 전주 땅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새로 온 기획자는 귓속말로 '우리의 비밀을 꼭 지켜주마'라고 했지만, 점점 그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소문의 근원지를 전주에서 만난 그분이라며 탓할 수 없었다.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가 없다고 했다. 평소 아무리 친하게 지내던 우리라도 퇴근 후 같은 버스를 타고 단둘이 놀러 가는 모습은 동료들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공식적으로 우리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뒤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필 조직 내 '빅마우스'에게까지 이야기가 들어가 우리 둘의 연애는 심심풀이 땅콩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되돌아보면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또 있을까 싶지만 그때는 참 힘들었다.(나라도 입이 간지러웠을 것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노골적으로 나를 떠보는 사람들에 화를 내기도 하고, 누가 소문을 냈는지 캐고 다니며 치를 떨었다. 내 사적인 이야기가 안줏거리로 씹히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한동안 그때 뒤에서 내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고 다니던 사람들을 많이 미워했다. 마치 약점이라도 잡힌 것처럼 당당하게 따지지도 못하면서 나도 뒤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남이 비밀로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저렇게 쉽게 떠벌리다니... 정말 못됐다.'
세상에 지켜지는 비밀이 있을 거라 착각하며 엄한 사람들을 미워하고 욕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나. 비공식적인 소식을 많이 알고 있으면 왠지 조직에서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나는 그들을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미웠다.
나는 그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면서부터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내 사랑을 말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속 시원했다. 차라리 당당하게 밝혔더라면 속 시원했을 텐데 그때는 왠지 초등학생처럼 '놀림을 받는 것 같다'는 마음에 분하고 억울하기만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가 연애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우리 비밀을 지켜주고자 모른 척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빅마우스가 떠들고 다니는 우리의 비밀을 조용히 주워 담고 있었다.
사람을 미워하다가도 뒤돌아보면 그 마음이 참 우습고 안될 때가 많다. 미운 행동을 한 사람도 결핍이 있었고, 그 사람 행동을 미워하는 나도 마음이 넓지 못했다. 그걸 알게 된 후부터는 순간적으로 미운 감정이 들다가도 잠시 멈춰서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아, 지금 내가 마음이 비좁구나. 진짜 불만이 뭐지?'
시간이 지나 미워하던 사람들도 흘러가고, 우리 부부에게는 웃으며 회상하는 추억이 되었다. 뒤돌아보면 너무나 작은 해프닝들이 그 당시 내 세상을 흔들고 울고 웃게 했다.
한없이 크고 지키고 싶던 비밀들이 지나고 보니 작고 웃음 나는... 그런 것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