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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주도성과 티처보이

학생을 행동의 주체로

by 김갑용

1. 티처 보이(teacher boy)란?


“우리 아이는 알아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너는 꼭 시켜야 하냐!”

“좀 물어보지 말고, 알아서 척척 잘 처리하면 좋겠는데…….”


아마 많은 부모님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자율적인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의존적인 학생이 있다.


‘티처 보이(teacher boy)’라는 신조어가 있다.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하여 혼자서 공부하는 능력을 상실한 학생으로 교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공부해 나갈 수 있는 의존형 학생을 마마보이(어머니에 의존하는 남자아이)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한국 교육개발원 조사(2005)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생의 50% 이상이 이러한 교사 의존 학생이라는 것이다. 의존적인 학생은 혼자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마음이 놓인다. 소극적인 태도로 타인의 지도와 도움을 기대하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책임을 지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학생은 어떠한가? 자율적인 학생은 스스로의 뜻에 따라 자신의 진로와 운명을 결정한다. 스스로 결정하여 스스로 행한 일의 결과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율의 의미에서 자기 결정이 하나의 권리행사라고 한다면 책임은 그에 수반되는 의무를 뜻한다.

자기 결정성(self-determination)이 높은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동기가 강한 사람으로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시선과 평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Deci와 Ryan(1985, 조미진, 2010: 10 재인용)에 의하면 “자기 결정성은 선택의 경험이며, 지각된 내적 인과 소재의 경험을 포함하는 인간기능의 자질이다. 그리고 보상이나 외부 압력 등에 의해서 강요된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또한 자기 결정의 심리적인 특징은 다른 사람과 혹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해내는 융통성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정의했다. 결국 자기 결정은 강요나 의무감이 아닌 스스로 내린 선택에 따라 행동함을 뜻한다.


따라서 필자는 의존적인 학생을 행동 주체로 바로 세우기 위해 이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보고, 이러한 현상의 제요인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어느 티처 보이의 학교생활

학교생활에 있어 학생이 교사에게 의존하는 정도는 저마다 다르다. 어느 정도까지를 티처 보이라고 보아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본 연구에서는 학급 내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그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두 명의 현직 교사를 정보제공자로 선정하여 교단일기 형식의 글들을 제공받아 사례별 행동 성향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가. 수업 시간


의존적인 학생의 일반적인 행동 유형은 ‘울기’와 ‘투정 부리기’이다.

자신이 당면한 문제 현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긴장과 두려움 또는 불안을 느꼈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울거나 투정을 부린다. 모두 타인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K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방과 후에 나와 함께 수학 문제를 푸는 K가 울먹이더니 코를 훌쩍거리며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어떻게 푸는지 모르겠단 말이에요.’라고 말한다.

의존적인 학생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을 타인에게 돌린다. A는 소집단의 리더로서 모둠 활동을 전반적으로 진행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책임을 다른 모둠원에게 떠넘기고 있다. 의존적인 학생은 자신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다가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 오면 불안해하거나 회피하려 든다.


사회 수업 시간에 모둠에서 조사해온 자료를 가지고 보고서를 만들기로 했는데, A군이 모둠 이 끔 이를 하고 있는 모둠은 보고서를 시작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 번 다가와 “선생님, 제목은 무슨 색으로 써요?, 사진 어디에 붙이면 좋을까요? 등등” 다른 친구들과 협력하지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고 물어보다가 자기 스스로 하는 일없이 시간이 지날 때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가 울음을 터트리며 모둠 구성원의 다른 친구 핑계를 대며 원망한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본다. 소위 물어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아이, 그것은 내게 뿐만 아니라 교우관계 속에서도 그렇다.


의존적인 학생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를 회피하려 든다. K에게 제시된 문제는 이전에 해결해본 경험이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K는 스스로 자신을 무능한 사람이라 여기며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했으며 K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가르쳐 주었음에도 K는 내 앞에서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혼자 해결하는 시간을 주었을 때는 시종일관 그저 모른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렇다면 K는 정말 모르는 걸까? 분명 수업 시간에도 해결한 문제이고, 방금 전에도 해결한 문제인데 혼자 해결해 보려는 노력도 없고 의지도 없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아쉽게도 자신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이고 본인은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안 된다고 포기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언제나 내게 묻는다. ‘어떻게 풀어요?’, ‘어디에 써요?’, ‘이거 해도 되죠?’


의존적인 학생은 매사에 호기심이나 흥미가 없다.


L은 지금 미술 시간에 질문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다. 학습 의욕이 전혀 없다. 예체능 교과의 경우 학습에 대한 부담이 적은 교과임에도 그의 적극성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가끔 교사가 제시하는 의견에 복종만 할 뿐이다.

L은 나에게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아이에게 다가가 학습 활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면 열심히 뭔가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연필만 만지 작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친구가 하는 것을 넌지시 처다 보기만 할 뿐이다. L에게 다가가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나타내고 싶은지 물어보면 L은 대답이 없다. 그러자면 내가 조금의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도록 몇 가지를 가르쳐 주면 L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들의 작품은 이제 그 윤곽이 드러날 시간인데 L은 여전히 내가 말해주었던 그 생각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실 작품의 시작도 나의 생각이었으니 중간도, 마무리도 L에게는 쉽지 않은 작업이겠으나 어찌 됐든 L은 그다음이 막막하기만 하여 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여타의 아이들처럼 질문이라도 한다면 대답이라도 해줄 터인데, L은 질문도 활동도 없다. 그저 내가 만들 작품을 이야기해주면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할 뿐이다.

나. 학급 임원 활동

의존적인 학생은 용기가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고 타인의 눈치만 살핀다. 또한 타인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학급 임원 선거 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A의 행동은 그 자체가 ‘마마보이’이었고, 또한 ‘티처 보이’이었다.


학급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1학기 학급 임원 선거를 하기로 했다. 반장 후보를 뽑는데 B는 스스로 손을 들어 자기를 추천한 것이다. 반장으로서 선생님을 도와 우리 반을 이끌어보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너무나 멋져 보였다. 또 다른 후보 A는 주변만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 아이 하나가 손을 들어 A를 추천했다. 후보 연설을 하는데 두 친구 모두 훌륭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B는 너무나 간단한 소개였지만 어린이 말로 되어 있었고, A는 매끄러운 문장에 왠지 모를 어른의 손이 닿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열심히 준비를 해왔나 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결국 우리 반 반장은 A가 되었다. 반장 투표 후 당선 인사를 시켰는데 우물쭈물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뻐서 그러니?”라고 물어보았다. “아니요, 당선 인사는 엄마랑 써오지 않아서 그래요.” 하는 것이다. 귓속말로 “그냥 뽑아줘서 고마워, 열심히 할게.”라고 하면 된다고 했더니, 정말 그대로 말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의존적인 A가 반장이 되었다. 학급의 리더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였을까? 축구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책임이 부여되었다. 교사는 몇 가지 사항들을 일러주었다. 하지만 일의 진척이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것은 A도 마찬가지이다.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A는 몹시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나타난 B는 팀의 주장이 되어 대회 준비를 척척해 나갔다. A와 B 모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지만 행동의 주체성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학교 축구대회 시작되어 반장인 A에게 권한을 위임하였다. 중간놀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연습도 틈틈이 하도록 하였고, 팀도 구성하라고 하였다. 축구대회 날짜는 다가오는데 도통 진전이 없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누군가가 알려주고 지시해 주어야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때 빛을 발한 친구가 있었다. B는 친구들 사이에 축구를 잘해 인기가 많은 편이다. 자신이 주장이 되어 친구들과 의논하여 포지션을 정해주고 후보 선수까지 정한 후 연습시간을 만들어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2승 3패로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우리 반 친구들은 B덕분에 2승도 할 수 있었다고 칭찬을 한다. 언제나 씩씩한 아이.


다. 현장 체험 학습


의존적인 학생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려 한다. 의존적인 학생의 가장 큰 특징은 질문이 많다는 것이다. C의 경우처럼 먹는 것, 화장실 가는 것,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에 대해 질문을 하고 그 지시에 따르려 한다. 지나치게 의존적이고 복종적인 모습이다.


소풍 가기 전날, 준비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C가 또 묻는다. ‘과자는 몇 개 가져와도 돼요?’, ‘껌은 가져오면 안 돼요?’, ‘김밥은 사 와도 되죠?’라는 마지막 질문에 내가 또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건 알아서 해라.’ 소풍날도 C는 버스를 탈 때부터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꼭 짝꿍이랑 앉아야 돼요?’ 버스 안에서도 또 묻는다. ‘껌 먹어도 돼요?’ 버스에서 내리면 또 묻는다. ‘화장실 가도 돼요?’ 전시장을 둘러보며 또 묻는다. ‘만져 봐도 돼요?’, 점심을 먹을 때도 또 묻는다. ‘저기에 앉아서 먹어도 돼요?’ 그리고 점심을 다 먹고 또 묻는다. ‘과자 먹어도 돼요?’, 그리고 목이 마르면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가도 돼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자도 돼요?’라고 물어보지도 않고 잠을 잔다.


3. 티처 보이 탄생의 이유

학생이 행동의 주체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학생 상일 것이다. 앞서 살펴본 티처 보이의 학교생활은 수업을 포함한 모든 시간에 전반적인 활동에서, 교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동료 학생들 사이에서도 의존성을 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티처 보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의존 성향은 절대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환경에서부터 학습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는 학생 개인적 특성으로써 성격과 성향, 부모의 양육방식을 포함한 가정환경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가. 개인적 특징


의존적인 학생은 자신의 욕구를 타인에게 종속시키고 삶의 중요 부분에서 남에게 의지하거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게 된다. 또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어 다른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모든 것을 해 주기를 바라며,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과 분노를 표시하고 괴로워한다. 한편, 의존심이 강한 아동의 경우에는 혼자서 수행할 수 있는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시도도 하기 전에 어른들의 도움을 요청한다(강경미, 2005: 260).

앞장에서 살펴본 티처 보이의 학교생활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그들의 행동 특성과 성향은 다음과 같다.

■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하면 울거나 투정을 부린다.

■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을 타인에게 돌린다.

■ 책임져야 할 상황이 오면 불안해하거나 회피하려 든다.

■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를 회피하려 든다.

■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매사에 호기심이나 흥미가 없는 편이다.

■ 자시의 의견을 없고 타인의 의견에 복종만 있을 뿐이다.

■ 용기가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핀다.

■ 타인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려 하기에 질문이 많다.


이러한 의존 행동의 원인을 개인적 측면에서 찾아본다면 우선 신체적으로 허약하거나 어린 시절 만성적인 신체적 질병을 앓았던 아동에게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할 정도로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이 부족한 아동이 책임 회피를 위해 의존적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 가정환경 ; 부모의 양육 방식


부모의 양육 방식 또한 학생의 자율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부모의 양육 방식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이중 아이가 안쓰러워 보여 무엇이든지 미리 챙겨주었던 부모(익애형), 아이의 능력을 무시해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부모(지배형), 반대로 맞벌이이거나 아이에 대한 기대치기 높아 아이가 빨리 독립적이길 바라는 부모(과잉기대형) 등이 아이를 의존적으로 만들 수 있다(정지은․김민태, 2011: 108).

다음 사례는 의존적 모습을 보였던 A의 부모님이 어렵게 얻은 자식에 대해 과잉보호를 하는 ‘익애형 부모’에 해당함을 짐작케 한다. 부모의 지극한 사랑과 관심으로 학생은 의존성이 높아지고 스스로 성취하려는 의지를 쌓을 기회를 박탈당한다. 학생의 개체성과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아서 자율적인 행동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A의 어머니는 시험관으로 아이를 어렵게 낳았고 어렸을 적부터 병치레가 심해 힘들게 키웠고, 집안에서 장남의 아들이라 귀여움을 독차지한다는 것이다. 공기업에 다니시는 아버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란 아이, 매일 학교 끝나면 엄마가 데려다주는 학원으로, 도서관으로, 집에서도 엄마가 짜준 시간에 맞추어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K의 경우 엄마와 헤어져 살면서 몸이 불편한 할머니의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등 집안일을 하며 당찬 모습으로 밝게 생활하는데, 수업 시간만 되면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 아마도 엄격한 통제와 권위적인 모습의 아버지가 ‘지배형’ 또는 ‘과잉기대형’의 양육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K는 할머니와 아빠, 그리고 정신지체가 있는 고모와 함께 산다. 엄마는 K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지방으로 가셨고 방학 때 엄마를 만나거나 간혹 전화 통화를 하는 정도라고 한다. 엄마와 함께 살지 않는데도 K는 밝고 명랑하다. 자신의 이런 가정환경을 스스럼없이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말하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도 하다. K는 모든 학생들이 무서워하는 상급생 남자아이를 발로 차기도 하며 그 상급생에게 윽박을 지르기도 한다. K는 호기심도 왕성하고 학습 외의 환경에서는 혼자 스스로 결정하는 일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학습 환경에 들어오면 K는 자꾸만 작아지는 걸까?

K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일기 안 썼다고 아빠한테 맞았어요.’(물론 폭력의 수준은 아니고 체벌 정도로) ‘~을 안 해서 아빠한테 혼났어요.’, ‘아빠가 바쁜데 뭘 부탁했더니 아빠가 다음부터는 뭐 안 해준다고 했어요.’하면서 울기까지 했다.


지배형이나 과잉기대형의 양육태도에서 학생이 의존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어른의 말에 불복종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불안을 회피하기 위함이다. 또한, 부모와의 밀착 관계가 훼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부모를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양육방식으로 본 부모 유형은
① 수용형 부모 : 아이에게 따뜻하고 자상한 태도로 일관하며 아이와 정서적으로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고자 노력하며 아이의 생각이나 하는 일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표현할 줄 안다.
② 익애형 부모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경우이다. 아이에게 지나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어 아이의 연령이나 능력에 상관없이 항상 보호하고 시중을 들어준다. 아이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할 기회마저 빼앗게 된다.
③ 허용형 부모 : 아이가 원하면 모두 충족시켜주려 하고, 아이가 무엇을 하든지 내버려두는 유형이다. 익애형 부모와 비슷하다.
④ 거부형 부모 : 아이에게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이다.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버릇없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자랄 것이라 염려해, 아이에 대한 애정을 억누르고 아이가 하는 일에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⑤ 지배형 부모 : 부모가 마치 아이의 지배자가 되어 엄격하게 통제하고 이것을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 권위적인 아빠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아이와의 관계에서 부모의 권위를 찾으려고 한다.
⑥ 과잉기대형 부모 : 부모 자신이 어렸을 때 이루지 못한 것들을 내 아이가 대신해줄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는 유형이다. 부모의 기대치 때문에 아이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것들을 요구하기도 하고 닦달하기도 한다(정지은․김민태, 2011: 39).



4. 티처 보이의 사회․문화적 조건


티처 보이의 탄생은 앞서 살펴본 학생의 개인적 특성과 부모의 양육방식에 의해 강력한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에 ‘학교’와 ‘문화’라는 관점을 더하여 그 영향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학생은 학교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생활하고 있고, 학교를 포함한 사회 문화는 잠재적으로 우리 행동의 패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티처 보이 탄생의 사회․문화적 조건을 분석함을 통해 학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힘은 물론, 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 차원의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 권력 거리가 큰 학교 사회

홉스테드(Hofstede)는 다국적 기업인 IBM사의 50개국 사원을 대상으로 문화적으로 결정된 가치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하여 국가 간 문화 차이를 분석하였다. 이중 학교에서의 권력 거리(power distance)에 관한 내용은 티처 보이 탄생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홉스테드의 문화이론에 따르면 권력 거리가 큰 학교일수록 ‘티처 보이’가 많을 거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가 묘사한 권력 거리가 큰 학교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선생님은 존경으로 대한다(나이 드신 선생님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선생님이 들어오실 때 학생들이 일어서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과정은 교사 중심적으로 되고, 학생들이 무엇을 배울지는 교사가 규정한다. 반에서 학생은 하라고 할 때만 말할 수 있다. 교사의 말은 절대 남 보는 데서 거스를 수 없고 또 비판할 수 없으며, 교사는 학교 밖에서도 받들어 모셔야 한다. 어린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 교사는 그 부모에게까지 간섭하여 어린이 버릇을 고치게 한다. 교육과정은 교사의 방식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Hofstede, 1995, 차재호․나은 역 역, 2001: 62>

수업시간에 교사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교사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과 학생은 교사를 존경심으로 대해야 하는 절대적인 교사 권위 측면에서 우리 학교 현장과 많이 닮아 있다. 또한 학생의 교사에 대한 의존성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권력 거리가 보다 큰 학교에서는 교사에 대한 의존이 지속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권력 거리가 작은 학교 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묘사하였는지 살펴보자.

교사는 학생을 기본적으로 동등한 존재로서 대하며, 학생도 역시 자신을 동등한 존재로서 대하며, 학생도 역시 자신을 동등한 존재로 간주하길 기대한다. 젊은 교사는 나이 든 교사에 비해 자신과 더 동등하며, 따라서 학생은 대개 젊은 교사를 더 좋아한다. 교육과정은 학생중심이므로 학생 주도권 하에 운영되어 학생 스스로 자기가 알아서 공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묻지 않아도 학생은 의문 나는 점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질문해도 된다. 학생들은 교사와 논쟁도 하고, 교사의 말에 이견을 말할 수도 있고 그를 비판할 수도 있으며, 학교 밖에 나와서는 교사에게 각별한 존경을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못된 행동을 할 때는 부모가 교사에 맞서 아이 편이 된다. 교육과정은 대체로 객관적이다. <Hofstede, 1995, 차재호․나은 역 역, 2001: 62-63>

교사는 수업시간에 학생이 주도적으로 나올 것을 기대하고, 학생 또한 교사를 동등한 존재로 대하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권력 거리에 따른 학교 사회의 모습은 ‘체벌’에 대한 생각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권력 거리가 큰 학교 사회에서는 사춘기 이전의 아이에게 용납되는 경향이 크다. 반면 권력 거리가 작은 학교 사회에서는 교사에 의한 체벌은 당장 아동학대로 간주되며 부모는 이를 고발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권력 거리가 큰 학교 사회에서 작은 학교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 중에 있으며, 여전히 권력 거리가 큰 편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권력 거리(power distance)라는 용어는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 모크 멀더(M. Moulder)가 처음 사용하였다. 상사와 부하직원 간 감정적 거리, 혹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한 의존도를 말한다. 권력 거리가 큰 사회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에 대체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자기 아이디어를 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만큼 인격적, 정신적 상호 평등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이정선, 2007: 28).


나. 통제 중심의 학교 사회


학교 수업 활동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사는 학생에 대해 적절한 통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학교생활에 있어 교사 주도의 통제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학에서 다루어지는 “통제란 사회 구성원이 기대되는 문화양식에 순응하도록 하는 보편적인 실제를 말한다(Shimahara & Sakai, 1995, 이정선, 2002: 144 재인용). 다소 부정적 이미지가 앞설 수 있지만, 필자가 논하고 싶은 학생 통제는 학교의 기본 단위의 학급에서 효과적인 교육활동을 위한 질서유지와 학생들의 일탈 행동을 방지하기 위한 지도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어떻게 학생 통제를 잘하여 수업과 학급경영을 잘해 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반면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교사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보낼까 궁리를 한다. 통제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이 상충되는 모습이다. 따라서 교사가 일방적인 통제를 가하기보다는 상호 간에 합의된 규칙을 제정하여 이를 준수하는 자율적 통제가 이루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학교에서의 통제가 학생의 바람직한 결과를 산출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교사나 학교의 기대에 순응하도록 작용하는 힘인 것은 분명하다. 학생 통제는 학교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교육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지나친 통제나 간섭은 자칫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저해시키는 요인이 된다. 교사의 통제 방법이나 유형에 따른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통제 중심의 학교 사회가 학생을 보다 의존적 성향을 갖도록 조장(助長)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 눈치를 봐야 하는 집단주의 학교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항상 남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금기(禁忌) 시 한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재빨리 알아채서 거기에 어느 정도 맞추어 행동해 줄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발휘되는 능력을 ‘눈치’라고 한다. 상대의 마음을 미루어 알아내는 힘인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은 교사와 동료 학생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교사의 뜻에 부합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다른 학생들에게 수용되는 것인지, 이 모든 것을 고려한 후에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때로는 행동의 주체가 타인이나 집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학생의 행동을 위해 교사라는 타인이 학교 집단의 전통적 역할에 따라 결정을 내려주는 경우이다. 모든 면에서 미성숙했다고 보는 저학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고학년의 경우에는 또래집단에서 행동 결정을 내려주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그 집단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다면 요구되는 결정에 따라야 한다.

결국 학생은 본인의 의사보다는 상대방의 의사를 먼저 파악하려고 하는 습성을 익히게 되고, 이는 타인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형성하게 한다.


라. 성스러운 학교 권위


예로부터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스승을 존경과 사랑으로 대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 후면에는 스승의 절대적 권위를 암묵적으로 옹호하고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교사에 대한 전통적 권위는 성스러운 ‘학교’의 후광으로 더욱 빛이 난다.

학교라는 교육현장이 신성한 것은 참된 인간을 길러내는 곳으로,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학문의 전당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본질적 가치와 달리 ‘학벌주의’가 주는 ‘신분상승’을 비롯한 개인적인 부수적 효과들로 인해 학교의 위상은 더욱 높아 젓을 것이다.

학교의 신성함은 배움의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시절에 더욱 눈부셨다.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특권이었으며,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이 보장되기도 했다. 졸업식 때 받는 개근상의 가치는 그런 저런 이유로 높게 자리매김되었다. 학교에 늦게 간다거나 결석을 한다는 것은 쉽게 생각지도 못했다. 마치 학교를 모독하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교의 신성함이 유지되는 공간이 있다. 여전히 ‘학교 현관’과 ‘교실 앞문’은 학생들의 이용을 금지하고 교사만의 출입 공간으로 남아 있다. 서원이나 향교 건물의 출입 형태에서 이러한 전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외(外) 삼문(三門)은 한자로 “밖에 있는 세 칸의 문”이라는 뜻이며, 외삼문 중문은 신도(神道)나 지방의 수령(시장, 군수, 도지사) 그리고 왕은 출입이 가능하나, 그 외 사람들은 동쪽(들어가는 쪽에서 보아 오른편) 문으로 들어가선 서쪽 문으로 나와야 한다. <인터넷 블로그 검색 자료>


이렇게 문을 세 칸으로 나누어 특별한 사람만 가운데 문으로 출입할 수 있고 보통 사람들은 양쪽 문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삼문을 권위와 위계를 상징하는 표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교육적 권위(權威)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음으로써 얻어지는 상대를 자기의 지도 밑에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는 정신적인 힘이라고 한다(위키백과). 반면 권위주의는 교사가 학생을 몹시 전제적, 강압적, 권력적, 지배적으로 대하는 속성이 있다. 교권 침해 또는 추락이라는 말이 자주 언론의 기사화되지만 스승에 대한 존경과 권위가 뿌리 깊이 잔존(殘存)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교사와 학교 권위는 학생의 행동 결정을 위축되게 할 뿐 아니라, 권위자에 대해 의존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5. 학교문화의 변화 전략 ; 학생을 행동의 주체로

이정선(2007: 303)은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학교문화를 변화시켜야 하고, 학교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학교장의 상징적 지도성과 교사의 연구를 통한 자기 성찰과 변화가 요구되며, 결국 교사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학교장과 교사는 문화의 4가지 구성요소인 상징, 영웅, 의식, 가치 가운데 “영웅”에 해당하며, 이 영웅은 나머지 세 요소를 강력하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교사는 가르치는 활동의 성격과 목적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한 자기 성찰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여기 가르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Fenstermacher & Soltis(2009, 이지헌 역, 2011: 23-24)가 제시한 3가지 접근 방식을 소개한다.

첫째, 관리적 접근에서 교사는 관리자가 된다. 교사는 복잡한 학급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가능한 한 최고의 기능과 테크닉을 활용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모종의 성과를 낳게 할 책무를 지닌 사람이다.
둘째, 촉진적 접근이다. 학생들의 선행 경험을 활용하는 것을 상당히 강조한다. 촉진적 교사는 대체로 공감적인 인간으로서 학생 개개인이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또 높은 수준의 자이 실현과 자기 이해에 도달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셋째, 자유교육적 접근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열어주고, 그들을 인류의 지식 세계로 입문시키며, 그들이 전인적이고, 유식하고, 도덕적인 인간 존재가 됨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위의 3가지 관점으로 우리 교육을 바라보면, 교육과정을 비롯한 교육제도와 학교 정책은 촉진적 접근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교 교육 현장은 아직 관리적 접근에 머물러 있다. 이는 교사의 학생 이해와 교사-학생 관계에 대한 인식이 아직 구태에 머물러 있고, 교사의 앎과 실천이 일치를 이루지 못한다고 보아야 한다. 바로 교사의 자기 성찰과 연찬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근 교육현장에는 ‘혁신학교’라 하여 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한 학교 변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혁신학교의 이론적 근거와 실천의 사례를 제공하고 있는 사토 마나부(2006)는 아이들을 자립적, 자율적인 학습자로 키우는 일은 교육의 크나큰 목적 중의 하나로 보고, 전달형의 일제식 수업 양식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개성적인 배움을 축으로 하는 활동적이고 협동적이며 반성적인 배움의 양식으로 개혁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특별히 ‘거짓 주체성’, ‘주체성의 신화’에 대한 그릇된 이해가 옛 서당식의 ‘자학자습’으로 퇴행해 버린 모습을 지적하며, 교사의 개입 밑에서 아이들이 자립하고 협동하여 수행하는 활동이 학교에서의 배움의 본질임을 강조하였다.


‘교사가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는 명제가 있듯이 교사들의 인식의 변화를 출발점으로 하여, ‘학생을 행동의 주체로’ 환원(還元) 해 주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이 프로젝트 학습이나 협동학습, 토의․토론학습 등의 수업방법의 개선일 수 있고,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한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의 신장과 자치활동의 강화일 수 있으며, 자율과 책임의 학교문화 형성이 될 수도 있다.


문화의 변화는 쉽지 않다. 기성의 문화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듯이 새로운 학교문화의 변화도 그만큼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된 인간을 위한 교육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인 방법들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 학생들이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 능력을 바탕으로 지식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식을 창조적으로 생산하는 미래사회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 문헌(사이트)

강경미(2005). 아동행동수정. 서울: 학지사.

이정선(2002). 초등학교문화 탐구. 서울: 교육과학사.

이정선, 최영순(2007). 초등학교문화 이해. 경기도: 양서원.

정지은, 김민태(2011). 아이의 자존감. 서울: 지식채널.

조미진(2010). 중․고등학생의 학업성취 수준에 따른 자율성, 관계성과 자기 조절 학습전략의 차이. 국민대학교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사토 마나부 저, 손우정 역(2006).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서울: 에듀케어

G. D. Fenstermacher, J. F. Soltis(2009). Approaches to Teaching. 이지헌 역(2011).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파주: 교육과학사.

Hofstede, G.(1995). Culture and organization. 차재호, 나은영 역(2001). 세계의 문화와 조직. 서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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