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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화장실 엿보기

학생들의 관념 속 화장실의 의미

by 김갑용


초등학교의 시설 중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확연히 구별되는 곳이 화장실이다. 과거의 화장실은 실외에 위치한 무섭고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이 대부분이었으나 오늘날은 실내에 위치한 수세식으로 잠깐의 휴식까지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변화되고 있다.
화장실은 어떤 곳이며,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초등학교 구성원들은 화장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본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들이다.




1. 화장실의 어제와 오늘




1) 변소와 화장실


화장실을 이르는 말에는 대소변을 배출하기 위한 시설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는 '변소와 집 뒤의 후미 진 곳에 있다 하여 붙인 말로 재래식이거나 허름하게 지은 것을 가리키는 '뒷간'이 있다. 그밖에 정방(淨房), 측간, 측실, 측정 등으로 불리어졌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라는 용어는 공중변소가 생기면서 기존의 지저분하고 용변만을 보는 단순 기능이 아닌 청결과 개선된 기능을 부각할 용어의 필요에 의해 '화장을 고치는 방'이라고 직역할 수 있는 화장실(化粧室)'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다.


아울러 일반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게 되는 공중변소는 1957년 12월 서대문구 아현 1동에 '만리 공중변소'가 그 시작이 되었고 이 변소는 1974년 8월 지하철 1호선의 개통과 함께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1970년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간이휴게소 4곳에 화장실이 등장했고 서울시에서 하나둘씩 공중화장실을 만들기 시자했다고 한다.
'변소'에서 '화장실'로 용어만 바뀐 것은 아니다. 영미 문화권의 위생을 강조한 화장실 문화가 유입되면서 화장실은 수세식이라 불렀으며 기존의 전통 방식의 변소는 재래식이라 하였다.


수세식과 재래식이라는 말은 분뇨를 처리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생긴 말이나 수세식은 우리가 배설한 분뇨를 물과 함께 섞어서 하수시설을 통해 처리하는 방식이다. 수세식이 용변을 보는 공간을 보다 청결하고 쾌적하게 개선시켜 주기는 했지만 먹을 수 있는 물을 오염시킨다는 것과 한번 내린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수세식을 좋게만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분뇨를 처리하는 방식의 변화와 함께 변기의 형태와 기능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최근 화장지가 필요 없는 비데라는 세정기의 등장을 보면 번기에도 첨단 기술이 가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터넷상에 게재된 한 회사의 비데 광고 문구를 살펴보자.


○세균 걱정 없는 항균 수지 적용
○체형에 따라 노즐 위치 변경 가능
○따뜻한 난방 변좌 및 온풍 건조
○수압, 온수 온도 조절 기능
○노즐 자기 세척 기능
○ 오존 탈취 기능
○분사펌프 내장으로 일정 수압 유지


이러한 화장실의 눈부신 변화는 초등학교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물론 가정의 개인 화장실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는 어렵지 만 공중화장실이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 옛날 변소는 학교 건물 뒤편 외진 곳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운동화로 갈아 신고 경쟁하듯 힘껏 달려가 칸막이도 없는 화장실 벽에 여럿의 남자아이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소변으로 높이 올리기 시합을 하기도 하고 바닥에 놓인 목표물을 향해 조준하여 장난하듯 볼일을 보기도 했다. 짓궂은 남자아이 들은 여자 화장실 앞을 어슬렁거리다 나무로 짜여 생긴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며 여자 아이들을 울리기도 했다. 겨울이 되면 그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시린 엉덩이를 비벼가며 용변을 봐야만 했다. 물론 일부 아이들은 학교 화장실이 무서워서 아무리 용변이 보고 싶어도 집까지 참고 가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요즘 학교 화장실은 그 위치와 구조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본 건물과 떨어져 외진 곳에 자리하던 것이 한 건물 안 복도 한편에 세면시설과 함께 배치되었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면 크게 난 창으로 햇살이 들이쳐 주위는 밝으며 천장 가까운 곳에 놓인 환풍기는 바삐 돌면서 환기를 시킨다. 바닥과 벽면에 아름다운 빛깔의 타일이 둘러있어 청소하기도 편리하다. 좌변기는 아니지만 변기는 모두 수세식이다. 앞의 그림은 오늘날 화장실의 모습이다.


2) 낙서와 청소


그 옛날 급하게 뛰어들어간 학교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다 살며시 고개를 들어보면 시선 속으로 들어오는 의문의 화살표가 있었다 궁금증에 못 이겨 화살표가 지시하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글귀가 있었다.


'뭘~봐!' 그 주변으로 '철수와 순이는 연예한테요'. '영태 바보'와 같은 낙서들이 창의 적인 그림들과 함께 크고 작은 글씨로 개발 제발 쓰여 있었다. 낙서 속의 주인공들은 그것을 지우려고 울먹이며 닦아내거나 그 위에 덧칠을 해 새까맣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화장실 벽면은 얼룩진 누더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학교 화장실에선 이러한 낙서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방이 타일로 둘러싸여 아동들이 혼히 가지고 다니는 필기구로 낙서하기가 어렵게 된 것도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깨끗해진 주변 환경에 차마 함부로 낙서를 할 수 없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행동을 순화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본 건물에서 떨어져 관리가 어려웠던 옛날과는 달리 선생님 등 많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복도 한 편에 화장실이 자리하게 되면서 아동들의 행동을 제약했을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우리들의 화장실 이용 문화가 개선된 화장실의 물리적 수준만큼이나 상승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낙서와 함께 청소에 있어서도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수 있다.


화장실은 과거에는 '악취'와 '불결'의 대명사로 여겨져 모두가 꺼리는 청소 구역이다. 그래서 화장실 청소는 주로 문제 행동에 대한 벌로써 주어졌다. 숙제를 해오지 않았거나 친구와 다투었거나 그밖에 학교 규칙을 어긴 경우, 일정기간 청소를 하도록 신생님으로부터 벌이 주어졌다. 하지만, 청소가 벌로 이용되는 것은 청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할 것이며 나아가 부적절한 근로의식을 갖게 할 수도 없지 않다.


청소는 기본적으로 자기 주변을 스스로 정리하는 기본적 습관 형성을 위한 활동이며 건전한 노작 의식과 급우 간의 공동체 의식 함양이라는 교육적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회장실 청소 벌칙이 히나로 삼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옛날 화장실은 콘크리트와 나무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단순한 구조의 건물이었지만 청소하기엔 그리 쉽지 않았다. 양동이에 물을 길어오는 아이와 그것을 바닥에 뿌리는 아이, 대빗자루를 이용해 뿌려러진 물줄기를 몰며 쓸고 다니는 아이, 집게를 이용해 쓰레기를 주워 담는 아이로 역할을 나누어 4-5명이 청소를 하였다. 이름칠엔 칭 소하기가 더욱 곤혹스러웠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 때문이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 가운데 가장 원초 적인 것이 후각이라고 하는데 그땐 이쩔 수 없이 코를 틀어막고 청소를 해야만 했다.


오늘날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화장실은 이진이 꺼려하는 청소 구역임에는 변함이 없다. 초등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청소 구이 담당자를 정할 땐 학생들의 희망을 받아 배치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인 지원자가 몰려 선발이 과정(가위 바위 보 등)을 거쳐 뽑지만 화장실과 같이 더럽고 냄새나며 힘든 곳은 지원자가 없어 남는 아이들에 대한 회유(懷柔)와 설득 작업에 들어간다.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서 여러 친구들을 위해 봉사한다면 그 보다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아이들에게 '봉사활동'이라는 시각을 갖도록 지도하다 보면 자신이 하겠다고 선 듯 지원하는 아이들도 하나 둘 생겨난다. 그렇게 화장실 청소당번은 탄생한다. 물론 청소 구역은 일정 기간을 두고 교체되어 순환된다.


최근 학교 운영비를 투자해 외부 업체에 청소 용역을 맡기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한다. 대학이나 빌딩, 아파트에서나 볼 수 있는 용역 회사 청소부를 초등학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성들이 와서 청소를 하게 되므로 아이들이 정소한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말끔하게 관리되겠지만 근로 기피현상, 황금만능주의 등을 생각해 보면 그리 개운치 만은 않다. 특히 청소가 인성교육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는 교육적 의의를 생각해 보면 더더욱 말이다.




2. 화장실의 의미


학창 시절 추억 속에 빠지지 않는 배경이 되었던 화장실, 요즘 아이들은 어떤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화장실을 관찰하면서 아동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의식 속에 담겨 있는 화장실에 대한 의미를 분석하여 보았다.


1) 사적 대화의 공간


공중화장실의 개념인 학교 화장실은 물리적으로 개인화된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폐쇄된 좁은 공간에서 안으로 문을 걸어 잠그면 그 순간 사적 공간이 된다 물론, 불쑥 외부인이 끼어 들어올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낼 순 있어도 무단 침입자에게 무언가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침입이 허용된 사적 공간이다. 사적 공간으로 인식되는 화장실을 아이들은 대부분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다니려 한다.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에 같이 가기를 요청하는 대화들이 오간다.


"민지야~ 화장실 간의 안 갈래?"


초등학교 쉬는 시간에 흔하게 듣는 대화이다. 특히, 여자 아이들의 경우에 수업 중이라도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가려한다. 아이들은 왜 사적인 공간에 함께 가려하는가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 해저는 먼저 화장실을 물리 적인 공간이 아닌 사회적 공간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즉, 공간 지각에 있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유지되기를 바라는 선호 거리의 사적인 공간(personal space)으로 이해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 Hall)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회적 공간을 대상과 사회적 관계에 따라 친밀한 공간 개인 공간 사회적 공간 공적인 공간으로 분류했다.

주) 친밀한 공간 : 45 cm까지의 범위이며 매우 가까운 친구나 가족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가까운 관계에 있어 서만 접근이 허용되는 공간, ② 개인 공간 : 45~120m까지를 의미하며 대화가 가능하고 상대방을 섬세한 부분까지 잘 볼 수 있다. 이 구역에서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회적 접촉을 유지하며 원한다면 신체적 접촉도 가능, ③ 사회적 공간 : 120~360m의 범위를 나타내며 다양한 교제를 위한 환경이나 여러 명이 담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의 범위, ④ 공적인 공간 : 30m 이상의 거리를 의미하며 극장이나 강의실에서와 같이 형식적이고 공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이에 따르면 학교 화장실은 친밀한 공간에 속한다 아이들에게 있어 화장실을 함께 간다는 것은 상대에게 특별히 가까운 관계임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은밀한 장소에 함께 간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를 스스럼없는 사이로 인정하는 행동이며 동시에 편한 친구임을 확인하고, 나아가 친밀함을 과시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들어간 화장실에서 그들은 무엇을 할까? 잠시 초등학교 화장실을 살며시 들여다보자 그들은 그곳에 모여 심심하거나 무료하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곳에서 그들이 나누었던 이야기 주제들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그들의 이야기 주제를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남자 : 게임. TV, 별난 음식, 학원, 가

여자 : 가정, 진실게임, 놀이 편 짠 것, 남 흉보기…


그곳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수다와 같은 잡다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일상생활 이야기와 친구 간 결속을 다지는 이야기.. 친구나 선생님의 흉보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남자아이들은 일상생활 속의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 반면, 여자아이 들은 걸 속을 다지는 내용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요즘 많은 초등학교의 하루 시정은 블록제로 운영된다(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으나 대부분 시간 활용의 융통성을 지향하려 한다),
열풍처럼 번진 열린 교육의 영향으로 기존의 2시간 분량을 1블록으로 운영하면서 고정된 40분 단위 시간에 대한 개념의 벽이 허물어졌다. 따라서, 용변을 볼 수 있는 쉬는 시간도 학교 단위로 일시에 행하지 않고 반별로 또는 개인별로 상이하게 운영되면서 화장실을 몇 명만의 대화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더욱 유리해졌다.


학교는 집단생활 공간이다. 때문에 건물의 구조가 공적인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 그나마 사적인 공간으로 이용 가능한 곳이 있다면 바로 화장실일 것이다. 필자의 하교에서는 아동복지 차원에서 복도 층계 아래 여유 공간에 원형 테이블을 갖다 놓고 의자를 준비하여 학생들에게 대화의 공간으로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공간은 개방되어 있고 타인의 통행이 빈번한 곳이기에 학생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적 대화를 위해서는 화장실이나 복도의 한쪽 끝 구석진 곳을 더 활용하려 한다. 비록 일상적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학생들은 들반의 사적인 공간에서 은밀한 대화로 친밀함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다.


2) 일괄 감시 체계 속의 자율 공간


건물은 물리적 공간의 의미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 공간으로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몇 해전 필자는 학생들을 데리고 체험학습 일환으로 법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안내해 주는 직원을 따라 법정으로 가던 길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좁은 통로에 이두운 조명, 몇 걸음 못 가서 방향을 바꾸고 또 바꾸는 그렇게 미로처럼 복잡한 길을 걸으면서 심리적으로 무언가에 압도되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그곳을 따라 법정에 선다면 누구라도 거짓을 고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프랑스 철하자 미셀 푸코는 군대와 감옥과 학교의 구조를 일괄 감시 체계로 설명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초등학 는 일자로 뻗은 복도를 끼고 교실이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부도의 어느 편에 서 있던지 그 복도를 끼고 있는 교실의 상황과 학생들의 움 직입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더하여 교실 안의 상황까지도 파악할 수 있도록 복도 편에는 많은 창들이 달려 있다. 군대 훈련소의 박사 구조나 교도소의 감옥 구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학교는 군대나 감옥과는 달리 통제의 목적과 방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하고, 건물의 구조를 일괄 감시 체계의 구조로 받아들일 때,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통제의 사각〔死角) 지대가 있다. 그곳이 바로 화장실이다. 화장실은 생리적 현상을 해길하는 곳이 기에 폐쇄되고 감추어진 공간이다. 인간의 본능이요 기본 욕구를 해 걸 하는 그곳을 어느 다른 공간처럼 감시 체계 속에 포함시키기란 심히 곤란한 일이다(감옥은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이 들은 감시의 시선과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장실을 찾는다. 일찍 등교한 아이들, 중간 놀이시간이나 점심시간 밖으로 나가지 않는 아이들 중 일부는 화장실에 모여 통제의 사각지대에서 자율적 행동을 즐긴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들이 펼쳐지는지 필자가 근무한 학교의 아동들에게 간단한 설문을 실시하고 그들과 가벼운 대화를 통해 알아보았다.


말다툼, 주먹다짐, 화해, 장난감 놀이, 딱지치기, 군것질, 춤 연습, 학교는 다인수 학생들을 소수의 지배집단이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규칙과 규율을 필요로 한다 그 규칙과 규율을 집행하는(일부 규칙은 교사에 의해 제정된다) 사람을 교사로 볼 수 있다. 교사의 눈을 피해 그들이 하는 자율적 행동은 대부분 규칙과 규율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통제 반고 제재받을 것이 뻔하기에 보다 자유로운 공간을 택한 것이다. 그곳이 다소 악취가 나고 지저분한 곳일지라도 말이다.


그곳에서 그들이 주로 하는 활동은 놀이와 군것질이다. 교사의 눈을 피해 놀이를 하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악취가 나고 지저분한 곳에서 음식물을 먹는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화장실에서 군것질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군것질도 혼자서 하는 경우와 삼삼오오 짝을 지어하는 경우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혼자 가서 먹는 경우는 대부분 수업시간에 몹시 과자가 먹고 싶거나 너무 맛있는 것인데 다른 친구들과 나누어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을 때라고 한다. 짝을 지어 함께 나누어 먹는 것에 대해 그 이유를 묻자 아이들이 이렇게 답했다.


"친구와 함께 정을 나누는 거죠.”

"추억 만들기죠."


또한 화장실에서는 말다툼이나 싸움과 같이 중대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행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설문내용 중 인상적인 것은 화장실이 다툼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해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 것은 화장실이 교사의 통제를 피하기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시선이나 간섭을 배제시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가 화장실에서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들에게 교실에서 하지 왜 화장실에서 하는지 이유를 물어보았다.


'남자들이 놀리고 부끄러우니깐…"


여자 아이들이 이곳에 함께 모여 춤 연습을 하는 것도 불필요한 시선이나 간섭을 배제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화장실은 자율적인 공간이다.




3) 혐오(嫌惡)의 공간


필자의 학급에서 초등학생들에게 화장실 하면 생각나는 것을 마인드맵으로 나타내 보게 하였더니 우선적으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낱말이 '냄새와 지저분함'과 관련된 어휘들이었다. 우리들의 기억을 들쳐보더라도 급한 마음에 들어간 화장실이 너무 지저분해 불쾌감을 느끼며 그냥 돌아 나와 버렸던 경험이 한두 번은 있었을 것이다. 다음 글은 화장실 문화시민연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용으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1학년 때의 기억을 담아놓은 이야기의 일부분이다.


화장실에서는 소독약 냄새와 고약한 냄새, 그리고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생쥐, 바퀴벌레 그리고 혼자서 있으려니 무서움까지 겹쳐져 그날 어떻게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고 니왔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 날 나는 집에 와서도 화장실 냄새 밤 무서움이 남아 있어서 점도 제대로 못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박기헤. 서울 00 초등학교 3학년)


화장실 문화시민연대가 200년 서울지역 525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초등학생의 화장실에 대한 욕구 조사에 따르면 학교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제일 불편했던 점으로 가장 많은 학생들이 화장실 악취를 꼽았고, 다음으로 지저분한 화장실을 꼽았다고 한다.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서 코를 막고 이용하는가 하면 화장실이 지저분해 볼일을 참고 집에까지 간 적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화장실을 위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냄새를 없애야 한다. 모두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 용변 후 물을 반드시 내린다, 화장실 시설을 교체했으면 좋겠다 비누와 수건 등을 설치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 밖에 내부를 환하게 해야 한다. 물을 아껴 써야 한다 낙서하지 않기 등이 있었다고 한다. 위 설문 결과를 살펴보면서 화장실을 '혐오 공간으로 만드는 원인을 관리 측면과 사용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먼저 시설관리 측면의 원인이다.


냄새 제거, 화장실 시설의 교체, 비누와 수건의 비치


시설관리 측면은생과 교직원의 복지 차원에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함을 말해 준다. 하지만 화장실에 대한 투자는 항상 뒷전에 있었다.


옛 속담에 "변소에 기와 올리고 살겠다 "라는 말이 있다. 인색하게 굴어도 큰 부자는 못 됨을 비꼬는 말로 변소에 까지 기와를 올리게 될 정도라면 큰 부자라 할 수 있다 는 의미이다. 이제 우리는 큰 부자라 할 수 있는 선진국가 건설을 꿈꾸고 있다. 선진국이 되면 모든 것이 일시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추구하는 과정 속에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척도라고 하는 화장실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져야 하겠으며 의식 개회과 투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소망컨대 이 땅의 모든 변소에 기와 올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둘째, 사용 측면의 원인이다.


모두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 용변 후 물을 반드시 내린다. 물을 아껴 써야 한다. 나서 하지 않는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우리들의 이중 적인 태도를 말해 주는 속담이 있다 “뒷간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 자기에게 긴할 때는 다급하게 굴다가 제 할 일을 다하고 나면 마음이 변하여 처음과 마음이 달라짐을 이르는 말이다. “똥 누러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화장실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급할 때는 요긴하게 이용하면서도 그곳을 좀 더 아름다운 공간으로 가꾸는 것에는 인색한 우리들의 마음 말이다.




4) 공포(恐怖)의 공간


우리들의 어린 시절 화장실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은 공포의 장소라는 것이다. 그 옛날 화장실은 본 건물과 떨어진 별도의 공간에 배치되어 특히 늦은 밤 화장실을 이용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화장실이 현대화되고 건물 내부에 배치된 요즘이라면 화장실 가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아이들에게 있어 화장실은 여전히 두려움의 공간이다. 특별히 여자 아이들에게 있어 이러한 의식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아이들은 왜 화장실을 두려움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화장실의 구조에 따른 밀실 공포증(caustrophobia)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겠다. 가장 사적인 곳이기에 폐쇄된 좁은 공간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밀실 공포증은 밖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바로 밖에 무엇 이 있는지 모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와 같은 공포 신경증은 현실적인 위험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의 특수한 대상과 관념 및 상황에 대한 심한 공포 때문에 나타난다 공포 신경 증자는 자신의 공포 반응이 불합리함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한번 상상해 보자. 화장실은 환하게 불을 밝혀 놓았지만 창 밖으론 어둠이 깔려 있고, 좁고 폐쇄된 공간에 나만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 인기척 하나 없는 고요한 정적 속에서 어쩌다 들려오는 바스라 거림에 이네 머리를 쫑긋 세운다 순간 스쳐가는 수많은 생각들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움츠러들게 한다.


둘째, 화장실과 관련한 다양한 귀신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은 뚜렷한 대상이 없는 막연한 느낌이지만 공포는 물질 적인 대상이 있는 감정이다. 몇 해전 학교를 소재로 한 공포물을 만들어 흥행을 거둔 우리 영화 여고괴담은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학교 귀신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를 꼬집어 주었던 작품이다. '괴담'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진 점에서 <여고괴담>과 차이를 보이나 학교의 귀신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일본의 영화 <하나코는 1999년 개최된 제3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PiFan 99)에서 소개된 바 있다.


"느끼나? 난 니 등에 업혀 있어!… 일본 전역을 소름 끼치게 한 화장실 괴담!!"


1990년대 일본에서는 청소년이 일으킨 엽기적인 살인사건들이 크게 사회문제화된 적이 있었다. 그즈음 일본에서는 새로운 공포영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소재로 한 히트작 〈학교괴담>이 그것이며, 이어 중학생을 소재로 한 〈화장실의 하나코), 여고를 무대로 한 에코 에코 아자라크 등이 일본 호러계를 충격으로 몰고 갔다. 실제로 10여 년 전 일본 여학생 사이에서 최대의 이슈로 떠올라 신드롬으로까지 확산된 괴담을 토대로 제작된 〈하나코>는 당시 일본에서 혼자 화장실에 학생들이 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학교의 하나코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츠루미 유키히코 감독의 <하나코(HANAKO)는 학교와 화장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공포의 한계를 배가시켰으며 학생들 사이에 떠돌던 학교 귀신-하나코-의 존재와 하교, 화장실이라는 섬뜩하고도 숙한 밀실 공포를 다뤄냈다는 평이다(http://wwwcininecokr). 허무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수많은 학교 귀신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밀폐된 공간에서 두려움을 자극적으로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된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화장실에 사는 귀신에는 달걀귀신, 몽달귀신, 노일저대.. 빨간 종이를 줄까? 파란 종이를 줄까? 하는 귀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에 더하여 학교가 세워진 곳은 옛날에 공동묘지였다 거나 화장실에서 아이가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들이 아이들 사이에 구진 되면서 화장실에 대한 공포는 한층 더 고조된다. 어떤 여자 아이는 화장실 청소 당번이었을 때 들었다는 귀신 이야기 때문에 화장실에 혼자 가기가 무섭 다고 하소연한다. 초등학교에서 쉽게 목도되는 광경들이다.




3. 종결 : 화장실의 변신은 무죄


1) 가고 싶지 않지만 가게 되는 곳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초등학교 학생들은 화장실이라는 공간에 대하여 사적 대화 공간, 자유 공간 혐오 공간 공포 공간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여기서 화장실에 대한 상충된 성향을 발견할 수 있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혐오의 공간이며 두려운 마음을 갖게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곳에 선 친구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율적인 행동이 가능한 곳이며 머리 무거운 수업시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용변을 핑계 삼아 찾아가는 휴게실이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이다 학교 화장실에 대한 아이 들의 인식은 한마디로 가고 싶지 않지만 가게 되는 곳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겠다. 단순히 생리적 현상 때문에 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곳이지만 그곳은 감시나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신 만의 개인 공간처럼 느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2) 문화공간으로의 변신


2000년의 ASEM 국제회의나 2001년 한국관광의 해, 2002년 월드컵 등 국제 적인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외국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우리 화장실의 현주소와 문화, 특히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있는 공중 화장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화장실 문화시민연대와 한국 화장실 문화 협의회'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화장실 문화의 개선 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일찍이 화장실 문화 협의회에서는 화장실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문화가 있는 화장실」을 표방하였다. 화장실이 단순 배설 기능의 장소에서 또 다른 원초적 욕구인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운동은 화장실이 과거에 단순한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장소였으나, 이제는 화장 독서, 사색 등을 할 수 있는 휴식 공간, 문화 공간, 생활공간으로의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화장실의 변신은 학교 화장실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학교 화장실을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대안들은 무엇인가?


학교 화장실 해서는 청결과 악취 제거가 그 선결 과제라 할 수 있다 청결이 유지된 곳이라야 올바른 사용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결을 위해 청소하기 손쉬운 구조와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악취 제거를 위해서는 환풍기 설치와 요즘 많이 보급되고 있는 자동 분사식 방향제 설치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청결하고 향기 나는 화장실 벼면에 눈높이에 맞추어 아름다운 풍경의 그림과 사진, 그리고 시화를 걸어두고 햇살이 드리운 창가에 화분을 놓아두자. 그 사이로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흘러 퍼지도록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화장실 체험시간 운영을 통해 화장실 관리를 몸소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다음에 화장실을 이용할 때 깨끗하게 사용해야겠다는 실천 의지를 다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문화 공간화된 화장실에 앉으면 누구나 저절로 사색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 선현들은 좋은 글이나 생각이 떠오르는 때를 삼 상사(三上思)라 하여 말 타고 가면서, 베갯머리에서 용변을 보면서라고 했다. 화장실이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루소의 사상이 탄생한 산실이 화장실이었다는 일화는 참으로 흥미롭다, 젊은 시절부터 루소에게는 방관 장애에 의한 방광염이라는 지병이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빈번하게 화장실을 가야 했고, 소변을 보아도 시원치 않은 증세로 무척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변기와 떨어질 수 없는 지경이 되었던旦소는 증상이 갈수록 악화되자 아예 화장실에 앉은 채로 사색을 했다고 한다.


하루에 6-7회, 많게 는 10여 회 꼭 가야 하는 화장실이 가장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니 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자연, 꽃과의 교감, 향긋한 내음 시와 그림, 음악 감상으로 신체에 북은 것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깨끗이 할 수 있는 근심이 풀리는 곳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일상문화연구회 편(202). 일상 속의 한국문화, 서울 : 나남출판.


학교 건물의 이데올로기(2001), 한겨레신문, 12.20.


한국문화인류학회 편(2001),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서울 : 일 조각


화장실 문화시민연대. URL http://www.retromor.kr


한국 화장실 문화 협의회. URL http://www.toilet.or.kr


씨네 라인. URL http://www.cinel.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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