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전도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강의를 했다. 겉으로 보기엔 신앙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가 남긴 말은 내게 묘한 위화감을 줬다. 강의의 요지는 세 가지였다. 첫째, 좋은 태도를 보여라. 둘째, 시스템으로 전도하라. 셋째, 전도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이 세 문장은 겉보기엔 합리적이지만, 그 안에는 교묘한 자기합리화가 숨어 있었다.
그는 강의 중 세 번이나 “불신지옥”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이도 있었고, 나처럼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누군가를 위로하기보다는, 두려움을 조장해 교회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처럼 들렸다. ‘좋은 태도’라는 말 뒤에는 결국 사람을 전도의 도구로 삼으려는 계산이 있었고, ‘시스템’이라는 말은 인간의 영혼을 정량화하려는 시도 같았다.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내세운 그의 불신지옥 담론은 이단의 전도방식과 무엇이 다를까? 실제로 이단들이 사용하는 설득법 또한 ‘지옥의 공포’와 ‘천국의 약속’을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방식이다. 그가 말한 “매년 100명 전도”라는 표어는 정말 혼자서 이룬 성과일까? 아니면 과장과 신화가 덧입혀진 숫자 놀음일까? 나는 그가 말하는 ‘전도왕’이라는 호칭이 오히려 신앙의 진정성을 해치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교회가 본래의 목적을 잃고, 사람을 ‘데려오는 일’에만 집중할 때 그 안의 영성은 사라진다. 전도란 누군가의 삶을 존중하고, 그 사람의 고통과 고민 속에서 신의 흔적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을 교회로 끌어들여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어떤 이들은 교회를 다니기 전보다 더 힘들어지고, 신앙의 이름으로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강의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교회가 힘들었는데, 사람이 많아지고 헌금이 늘어나면서 교회가 다시 살아났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의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시스템과 돈’임을 직감했다. 교회가 돈이 많아져서 잘 살게 되었다는 말은, 신앙의 회복이 아니라 장사의 번성처럼 들렸다.
교회는 장사의 자리가 아니다. 인간의 구원을 거래처럼 다루는 순간, 신앙은 타락하고, 믿음은 숫자에 종속된다. 전도는 영혼의 귀환이어야지, 고객의 확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신앙은 두려움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전도왕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그렇게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야말로 지옥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의 말처럼, 전도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자신을 위한 전도는, 다른 사람의 존엄을 밟지 않는 전도여야 한다. 믿음을 팔아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비춰 성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지옥’을 말하기 전에, 자신이 이미 만들어놓은 지옥 속에 살고 있지 않은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날 이후 나는 확신했다. ‘전도왕’이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보다, 조용히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무명의 신자가 천국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