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시스템화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내 할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문의는 마케팅을 타고 자동으로 들어오고, 영업은 영업직원이 처리한다.
수입은 구매 담당자가 맡고, 내가 하는 일은 개발·특수제품 구매·회계 정도다.
이 모든 걸 합쳐도 일주일에 두 시간 남짓이다. 출장이라도 잡히면 운 좋게 열 시간 정도 일하는 셈이다.
원래는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못하는 부분이 메워질수록, 오히려 내 일이 사라져 갔다.
예전에 회사에서 꼼꼼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늘 여유롭게 보였는데,
“일이 줄어들수록 꼼꼼함은 올라간다”는 그때의 가정이 맞았다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안다.
한 번은 실수로 천만 원 정도의 적자를 낸 적이 있다.
아마 지쳐 있을 때 내가 직접 하던 업무에서 실수가 난 것일 것이다.
직원이 들어오면서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나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직원들이 내 일을 대부분 해주고, 나는 사무실에서 그들이 일을 끝내길 기다리는 상황이 됐다.
생각해보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직원 두 명으로 사업을 완전히 시스템화했다.
다른 대표들은 죽기 살기로 해도 시스템화가 잘 안 되는데,
내 사업은 자연스럽게 구조가 잡혔다.
업무를 세분화해 적절한 직원에게 분배하고, 반복되는 작업을 표준화했다.
그 결과 지금은 사무실에 앉거나 침대에 누운 채로 직원들과 고객의 질의에 답하는 방식으로 회사가 굴러간다.
게다가 몇몇 제품은 오리지널이 나여서,
다른 사람들은 카피를 시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문제는 이제 책상에 앉는 게 공허해졌다는 것이다.
반복작업은 흥미롭지 않고, 마치 고여서 썩는 물처럼 느껴진다.
대한민국 재벌들은 나보다 더 한가하지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상상도 해본다.
그래도 아침마다 직원들의 일일보고를 읽는 일은 재미있다.
누가 어떻게 일하고 있고 무엇이 부족한지 대표의 시선으로 보면 다 보인다.
나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오만하리만큼 냉정해야 한다.
대표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판단해야 하고,
그 긴장감은 성장 속도를 몇십 배나 빠르게 만든다.
그건 서연고·포카 출신의 연구원처럼 시스템 안에서만 움직이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스템 속에서 강한 사람과, 시스템 자체를 움직이는 사람의 차이.
그 긴장을 오래 버텨 성장한 끝에,
나는 사무실에서 놀고 침대에서 누워 일하는 산송장이 되어버렸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듯,
부지런함의 끝에는 결국 ‘게으름’이 있다는 역설을 깨닫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