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과해

by 삶 집착 번뇌

살다 보니 사람들이 내게 ‘오버스펙’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회사에서도, 체육관에서도, 무엇을 하든 나는 자연스럽게 최상위권을 향해 움직였다. 경쟁은 나에게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밀어붙이는 방식이었다. 평가는 남의 판결이 아니라 피드백을 받기 위한 도구였다.


나는 피드백을 받아들일 때면 즉시 수정했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그 피드백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 노력했다. 돌아보면 내가 거절했던 피드백 중 4할은 틀렸고, 3할은 맞았으며, 나머지 3할은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평가하고 고치며,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나아오다 보니 어느새 35살을 앞두고 있다.


예전에는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겸손이라는 말 속에는 종종 ‘너무 나서지 마라’, ‘너를 드러내지 마라’는 뉘앙스가 숨어 있었다. 어느 순간, 겸손은 미덕이라기보다 침묵을 강요하는 방식처럼 느껴졌고, 나는 겸손보다 객관적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보다 잘난 이를 인정하지 못한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성장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뿐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지금 가진 위치를 잃지 않기 위해 버티는 데 집중한다.


그런데 요즘은 겸손이 아니라 숨김이 필요한 시기가 오고 있다. 부모님은 내 나이를 보고 결혼을 원하신다. 솔직히 지금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혼도 못 한 사회 부적응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가받는 데 적극적이었고, 자기평가도 철저히 했고, 피드백을 반영하기 위해 몸을 갈아 넣듯 살다 보니 지금의 나름 윤택한 삶에 닿았다.


부모님은 예전엔 늘 겸손하라고 하셨지만, 이제는 그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너는 지금 모든 게 너무 과해. 상대가 부담스러워한다. 너무 밝히지 마라. 특히 결혼을 생각한다면, 네 수준은 상대에게 너무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 내가 단순한 재벌처럼 돈을 크게 쓰는 사람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검소하게, 능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보니, 사치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검소하게 사는 사람에게도 애매하게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요즘은 굳이 ‘나와 맞는 사람’을 억지로 찾지 않으려 한다. 아마 내 수준과 결이 자연스럽게 맞는 사람을 찾으려면, 전 세계를 한 바퀴 돌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중 누군가의 이상형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그냥 살아가다 자연스럽게 나와 맞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반려가 되는 것도 좋겠고, 혹은 나와 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과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연은 억지로 만들 필요가 없다. 맞을 사람은 자연스럽게 남고, 아닐 사람은 노력해도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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