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랑에 빠질 때에는, 생각보다 많은 조건이 함께 작동하는 듯하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순수한 감정의 영역으로 분리해 생각하지만, 조금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사랑 또한 사회적 맥락과 개인의 상황 속에서 형성되는 일종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완전히 계산 밖에 있는 감정이라기보다는, 감정과 조건이 섞인 복합적인 결정에 가깝다.
아주 어릴 적, 이를테면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시절에는 조건이라는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가 이성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쉽게 호감을 느끼고, 사소한 친절이나 관심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 시기의 사랑은 판단 이전에 반응에 가깝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점점 타인의 시선을 학습한다. 누가 예쁘고, 누가 잘생겼는지에 대한 평가가 기준이 되고, 외모는 가장 빠르고 명확한 조건으로 자리 잡는다.
시간이 더 흐르면 조건은 점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대학, 직업, 부모의 배경, 자산, 거주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종교까지. 특히 30대 중반에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요소들은 선택의 참고자료가 아니라, 관계의 전제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모를 가장 먼저 보면서도, 겉으로는 성격이나 가치관, 지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외모가 자신의 기준에 들지 않으면, 다른 조건들은 검토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자신이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그리고 이성에 대한 경험이 늘어날수록 사람은 더 신중해진다. 하지만 그 신중함은 종종 비교와 계산으로 변한다. 더 나은 선택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선택을 미루게 만들고, 결국 누구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게 한다. 그렇게 관계의 문턱에서 오래 서성이다 보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조건을 더 쌓아 올리게 된다.
흔히 말하는 ‘도태’라는 개념은 선택받지 못한 남자와, 선택하지 못한 여자를 포함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점은 선택하지 못한 여성이 선택받지 못한 남성보다 더 많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자녀를 갖고자 하는 욕망이 남성에게는 비교적 본능에 가깝게 작동한다면, 여성에게는 그 욕망만큼이나 신중함과 책임이 함께 작동한다. 그렇다면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삶을 단순히 실패나 회피로만 규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오늘날에는 국경을 넘어 관계와 결혼이 이루어지는 일도 점점 흔해지고 있다. 생존을 위해 타지로 시집을 갔던 과거의 여성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 선택 또한 각자의 상황과 자유 속에서 이루어진 결정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평가하기는 어렵다.
나는 사회적으로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대부분의 모임에서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로부터 호감과 관심을 받는 상황에도 익숙한 편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사회적 도태의 범주에 넣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나이가 들수록 조건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전제가 되어버린 현실은, 이기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안타깝게 다가온다. 사랑이 조건을 필요로 하는 순간, 우리는 과연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가장 덜 불안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