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에게 돈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작은 돈을 모아 더 큰 돈으로 만드는 과정이 즐거움이었다.
대학 시절의 돈은 장학금과 생존, 그리고 성취감과 직결되어 있었다. 지금의 나에게 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수단, 혹은 0이 될 수 없는 게임 속 HP와도 같은 존재다.
최근 들어 다른 사람들의 100만 원과 나의 100만 원이 다르게 느껴진다. 누군가 하루에 100만 원을 쓴다면, 나는 그 돈을 모아둔 뒤에 사용하는 기분이 든다. 그들에게는 과소비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쓸 수 있는 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만 원 정도는 사소한 금액이 되어, 잃어버려도 기분조차 변하지 않는다.
한때는 돈으로 못 할 일이 없다고 믿었다. 물론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까지는 불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의 인간관계나 삶의 필요는 돈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돈의 상대가치가 너무 낮아져, 돈으로는 상대의 마음과 동등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 깨달음을 선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나는 교회에서 초등부 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처음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착하며 말을 잘 들어서, 이 아이들을 위해 내 돈을 쓰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얼마 전, 가족에 대한 애정이 깊은 아이의 생일이 있었는데,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가 케이크를 준비해왔다. 그녀는 신학생으로, 교회에서 받는 알바비와 부모님의 지원으로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소 빠듯해 보이는 삶이었다. 나는 대학 시절 장학금을 받고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아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했기에, 그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녀가 준비한 케이크 값은 만오천 원 남짓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금액이지만, 그녀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선택이었으리라. 그 작은 헌신이 내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나는 시간을 팔지 않고 가치를 파는 사람이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시간적·금전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의 그 헌신과 같은 가치를 지불하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날, 어린 그녀와 나 사이의 간극을 새삼 느꼈다. 단순히 어린 후배라 존중하는 마음만 있었는데, 그 순간에는 존경의 마음이 피어올랐다.
아이들이 남긴 케이크를 굳이 끝까지 먹었던 건, 아마 그 마음이 애틋해서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