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약한 버릇
나는 가끔 상대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혹은 상대방이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모습을 드러내길 바라며 질문을 하기도 한다. 결국 이는 상대를 얕잡아 보거나, 평가하려는 태도일 수 있다.
최근 교회에서 몇몇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질문 없는 신앙, 얕은 신앙, 단순히 소원을 비는 신앙, ‘배우자 기도’에 치중된 신앙에 점점 지치고 있었다. 가장 강하고, 가장 선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그 신앙이 이토록 얕고 이기적일 수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물었다. “왜 우리가 죄인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우리는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하지만 더 깊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죄성이라는 말은 두 겹의 의미를 갖는다. 철학적으로는 인간이 죄책감조차 느낄 수 없게끔 억제 장치를 두는 개념이고, 종교적으로는 나쁜 짓은 물론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 사랑, 관계의 표현일 수 있다.
그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영어의 sin과 guilt를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법적으로도 ‘살인 예비죄’가 있지 않나 하는 식의 논의가 이어졌다. 나의 질문에 맞춰 최선을 다해 답하려는 그들을 보며, 나는 문득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결국 내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 죄성이 가리키는 진리는 단순하다. 죄라고 여겨지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것. 그러나 정작 나는 ‘죄성을 아는가’라는 질문으로 타인을 시험하다가 또 다른 죄를 짓고 있었다.
죄라는 개념은 참 아이러니하다.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으면 죄가 아닌 듯 보이고, 상대가 불편하다면 아주 작은 잘못도 죄가 된다.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가치다. 결국 모든 인간은 원죄를 지니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서로를 헐뜯고, 싸우고, 배타하며, 무시하는가? 다들 죄를 지으며 살아가면서도. 오늘 하루는 그 사실이 우습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