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설교를 들으며 마음이 움직였다. 담임목사님의 설교는 지나치게 종교적이지도, 그렇다고 단순히 실용적이지도 않았다. 마치 시소가 균형을 이루듯, 영성과 실용 사이의 미묘한 평행을 잘 맞추고 있었다. 독실한 신자들에게는 종교적 메시지로, 나 같은 이들에게는 실용적 울림으로 다가오는 설교였다.
나는 설교에 실용과 종교가 동시에 담겨야 한다고 믿는다. 성경 또한 믿음이라는 뿌리를 내려 삶의 태도라는 열매를 맺으라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나름 괜찮은 삶의 태도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께서 보신다면 기뻐하실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신론자, 혹은 탈종교적 유신론자이기에, 어쩌면 하나님이 아쉬워할 태도일지도 모른다.
사업을 하며 깨달은 태도도 있다. 돈을 쥐려 하면 오히려 멀어지고, 내려놓을 때 다가온다는 진리 같은 것. 가격을 올리면 고객은 떠나지만, 기꺼이 주려 하면 오히려 신뢰와 거래가 따라온다. 욕심을 부리면 잃고, 욕심을 버리면 얻는 아이러니한 싸움이다.
이 태도는 간절함과도 닿아 있다. 정말 원할수록 몸에 힘이 들어가 결과가 좋지 못했던 반면,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은 의외로 잘 풀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간절한 것 앞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신이시여, 제가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허락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기도는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것이 내가 무신론자가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대신 요즘은 나를 비우는 기도를 드린다.
“제가 이런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이 단지 제 욕심일까요?”
이것은 기도라기보다 독백에 가깝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이 독백들이 믿음처럼 내 삶에 뿌리내려 더 좋은 태도를 만들어줄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