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회에서 내 글을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 아마 설교의 자리에 나와서 가장 즐겁게 듣고, 아주 좋은 태도로 사역하면서 이른 나이에 속세에서도 성공한 사람이 무신론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많이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종종 내가 무신론자임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 무신론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크게 당황스러워한다. 교회에서 내 비판이 나오더라도, 나는 교회를 비판하기 때문에 그 비판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를 자유신앙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신앙주의란, 신앙을 제도나 교리의 틀로 고정하지 않고, 개인의 이성과 양심을 기준으로 신념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사유하는 태도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교회를 마무리 지은 이후 성당이나 신천지를 가볼 생각도 했다. ‘그 안에도 진리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해보는, 뭐랄까 그런 나는 다원주의자이다. 요즘에는 교회에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속회를 끊어낸 것처럼 교회도 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교회에서 성도들이 복음주의, 성령주의, 문자주의를 자주 외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경은 오직 성령으로만 해석 가능하며, 단순한 글자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는 사상이다. 나는 그런 보수적 입장을 이해한다. 또한 나는 신앙인이 아닌 철학인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공감하지는 못해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말이 강요가 되는 순간, 신앙은 자유를 빼앗는 구속의 말이 되기도 한다. 절대 신앙은 강요될 수 없으며, 그 부분은 성경에도 잘 드러나 있다. 추가적으로, 지속된 초대는 강요의 탈을 쓴 초대일 뿐이다.
예수님의 고난과, 인간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시고 죽어가셨는지에 대해서는 적당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 인간의 대속물로 돌아가신 부분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믿고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는 나에게 새로운 질문이다.
나는 자유신앙주의자이자 이성을 우선시하며, 인간의 양심과 선한 마음을 믿고 의지한다. 인간 안에는 외부의 권위와 무관하게 스스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내적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배워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울리는 ‘양심의 목소리’에 가깝다. 나는 이런 양심과 선함을 신앙 못지않게 신뢰한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 주변의 서로 사랑하는 이들의 아름다움, 항상 착할 수는 없지만 신앙 밖에서도 서로 돕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양심과 마음. 그 모든 것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성경의 말씀. 그것 또한 성령으로 쓰였다면, 이 기적같이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들을 지옥으로 보낸다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사이비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이슬람교, 유대교, 개신교, 천주교, 불교도 있다. 사후세계가 오직 개신교와 그리스도에게만 독점된다면, 그것은 정죄받아 마땅한 일이며 개신교의 천국은 개신교인들만 가득 찰 것이다. 나는 이런 배타적 시선보다, 인간 각자 안에 있는 이성과 양심의 가능성을 더 신뢰한다.
나는 믿음이 구원을 받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아니라, 선택의 요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성경에서 하나님을 빼더라도, 사랑과 마음을 전할 수 있어야 그것이 완성된 전도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신앙을 절대 명령이 아닌, 인간의 지혜와 양심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하나의 언어로 이해한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