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씁쓸함

by 삶 집착 번뇌

나는 서른다섯을 앞두고 있다. 결혼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아니면 인생의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마음 때문인지 사람을 만나보려 애쓰고 있다. 친구에게 소개팅을 부탁하고, 닥치는 대로 나가보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매력적인 사람이 다가올수록 나는 도망가고, 거리를 두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다가간다. 문제는 다가오는 사람이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넘치는 경우가 많다.


며칠 전 결혼정보업체를 찾았다. 단순한 상담이었지만 본부장과 전무가 동시에 나와 내 자산, 사업, 외모, 성격, 부모님, 나이까지 낱낱이 물었다. 그리고 위에서 두 번째 등급을 추천하며 두 명의 프로필을 내밀었다. 자산 300억 집안의 자재분, 50억 집안의 자재분. 순간 ‘지금의 나는 이 정도 위치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장사꾼이다. 상대의 말이 영업 멘트인지 진심인지 구분할 줄 안다. 특히 나는 생존을 걸고 장사를 했지만, 그들은 직장인으로서 영업을 할 뿐이다. 영업력과 통찰력에서 내가 위라 생각한다. 그래서 상담도 차분히 지켜봤다. 하지만 가격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7배나 비쌌다. 그들이 내 진지함은 알아챘지만, 동시에 내가 그 서비스에 끌리지 않는다는 것도 눈치챘을 것이다.



잠시 본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전무가 조용히 제안을 던졌다. “가입비 없이 만나보시다가 성혼비만 더 내시는 건 어떠세요?” 결국 딜이 들어온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버틴 보람을 느꼈고, 동시에 내 가치를 확인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았다. 나는 진정한 사랑을 원했다. 하지만 수많은 연애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여자는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한다는 것, 그리고 늘 내가 가진 것보다 한 가지를 더 원한다는 것. 문제는 나는 그 한 가지를 내어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나는 늘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해왔고, 그래서 남는 힘이 없었다.



고객들은 말한다. “사장님, 이제 결혼도 비즈니스예요.” 하지만 나는 결혼만큼은 평범하기를 바란다. 마음을 기댈 수 있고, 지쳐 쓰러질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현실은 자본주의의 논리 앞에 놓였다. 내 자산, 매출, 차와 집, 나이까지 모든 것이 ‘가치’로 평가된다. 내가 평생을 걸어 쌓아온 것들이 결국 또 다른 상품성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자본주의의 씁쓸함을 느낀다. 만약 내가 모든 것을 잃고,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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