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먼 축의 성직자
나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나에게는 ‘철학자’라고 말하고, 타인에게는 ‘사업가’라고 소개한다. 두 단어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듯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두 영역 모두 **“내가 스스로 그 이름을 부르면 직업이 완성된다”**는 점, 그리고 어느 한쪽에서든 성공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점이다.
사업가와 철학자의 차이는 분명하다. 사업가는 물질에 의미를 부여해 팔고, 철학자는 삶에 가치를 부여해 보여준다. 나는 이 점에서 철학자를 신이 없는 성직자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이 글의 제목을 사업가, 철학자 그리고 성직자라고 하려던 것도 그 때문이다. 사업가와 철학자가 대칭 관계라면, 성직자는 그 축을 더 멀리에서 비추는 또 하나의 대칭점이 된다.
사람들은 흔히 사업가를 탐욕스럽고 욕심 많은 사람이라 여긴다. 하지만 경험상 정반대다. 오히려 욕심이 많으면 오래 버틸 수 없는 직업이다. 최근 나는 단순히 손가락 한 번 잘못 클릭한 실수로 200만 원을 잃은 적이 있다. 순간 억울함이 몰려왔고, 세 시간 가까이 몸을 웅크린 채 괴로워했다. 그러나 곧 “또 벌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훌훌 털어버렸다. 이렇듯 사업은 집착보다 내려놓음을 요구한다.
요즘 들어 성직자에 대한 시선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성직자를 정결한 사람들로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생각보다 추악하고 이기적일 때가 많다. 특히 돈과 전도의 문제에 있어서는 건드릴 수 없을 만큼 예민하다. 나는 그것이 사명과 가난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려 한다. 흥미로운 것은, 나는 ‘언젠가 망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이고, 그들은 이미 망해 있지만 다시 세우려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 미묘한 간극이 오히려 나를 끌어당긴다.
오늘도 수련 목회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아직 깊이는 부족하지만, 한 걸음 뒤에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최소한 썩지 않고, 앞으로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나는 여전히 사업가와 철학자, 그리고 성직자라는 세 축 사이에서 내 자리를 찾고 있다. 그 간극 속에서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야말로 내 정체성을 완성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