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큰 팬 중 한 명은 어머니다. 글을 올릴 때마다 읽고는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씀하신다.
“에이, 미친놈아. 장가는 어떻게 갈래? ㅋㅋ”
그러면 나는 장난스럽게 받아친다.
“나는 그런 여자면 가도 돌아올 것 같은데~ ㅋㅋ”
우리는 늘 이런 식이다. 재미있는 가족이다.
한때는 완전히 어두운 글을 쓸 때가 있었다. 그 글은 지금도 블로그에 남아 있고, 어머니는 대부분의 글을 읽으셨다. 당시 나는 신천지를 혐오하던 전도사에게서 오히려 신천지보다 더 혐오스러운 삶의 태도 강요를 받았고, 그로 인해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더 불편했던 건 그 전도사의 모습이 전 여자친구와 닮아 있었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그와 닮아 보였고, 결국 교회를 그만두려 했다. 그 즈음, 신앙 공동체 사람들의 위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글을 읽은 어머니는 “이 글은 절대 교회에 보여주지 마라”라고 하셨다. 웃긴다.
언젠가부터는 어머니와 친구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를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인정받는 듯해 기분이 조금 좋다.
어머니는 내가 철학자의 길을 걸어간다는 사실을 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신다. 철학자의 성향은 단순히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발현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독서량 최소 500권
시간적 여유
금전적 여유
사랑이 많고 인성이 바를 것
혼자를 좋아할 것
어머니는 아마 내가 성직자와 사업가 사이에서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부분만을 모아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느끼시는 것 같다.
자녀는 부모의 운명을 닮는다고 한다. 돌아보면 어머니와 나 사이에도 비슷한 점이 많다. 어머니는 고등학생 때 불교 동아리 회장이셨고, 나는 봉사 동아리 회장이었다. 물론 왕따였지만, 봉사 태도가 좋았던 나에게 선배가 망해가던 동아리를 넘겼고, 나는 그것을 꾸려갔다.
어머니는 지금도 절에서의 종교생활을 그리워하시지만, 물리적인 이유로 다니지 못하고 계신다. 반면 나는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취미처럼 이어가고 있다.
한편, 나는 아버지로부터 반면교사로 삼을 점이 많았다. 덕분에 악처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여전히 크고, 점점 움츠러드는 자신을 본다. 결혼이 늦어지는 것도 그 영향이 큰 것 같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만난 여성 대부분이 회피형이었다. 어쩌면 그것도 운명일지 모른다. 그런 시기가 닥친다면, 그저 운명이겠거니 생각하고 순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