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에 대한 고찰

by 삶 집착 번뇌

최근에 한 타락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어머니에게 욕을 많이 먹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다.

그 경험을 곱씹으며, “자기도 인간이니까 타락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는 수련목의 태도가 과연 타당한가를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다. 결론은 ‘아니다’였다. 왜냐하면 그곳은 교회였기 때문이다. 나는 교인이고 그는 목사 준비생이다. 교회 내부에서는 세상의 법보다, 지옥의 철퇴보다 더 무서운 잣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와 동시에,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철학자로서의 나는 어느 정도의 타락은 용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 타락의 길로 들어선 그녀는 죄인일까?

나는 요즘 이 질문에 자주 머문다. 기독교에서는 타락도 회개하면 용서를 받는다고 한다. 반면 불교에서는 업보로 되돌아온다고 본다. 나는 오늘, 그녀가 부처의 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 안기길 조용히 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가정을 해보았다.

타락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비롯된 것이지만, ‘타락을 해서라도 삶의 도구로 사용하라’는 것이 신의 사랑이라면 어떨까?


믿음을 ‘뿌리’라 하고 삶의 태도를 ‘열매’라고 할 때, 믿음과 타락은 본래 상반된 개념이다. 그러나 썩은 뿌리에서 피어난 열매가 오히려 값질 수 있다면?

이 가정은 논리적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믿음 그 자체보다 삶의 태도라는 열매를 더 중시하셨고, 믿음은 그 열매를 맺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는 가설 말이다.

나아가, 믿음이 없어도 올바른 삶의 태도를 맺는다면 그것 역시 신의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신에게 당돌하게 묻고 싶다.


> “지옥과 타락은 왜 만드셨습니까?

만든 것이 아니었다면, 왜 저지하지 않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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