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타락

by 삶 집착 번뇌

예전에 성직자는 결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결혼을 하면 자금이 필요해지고, 자녀는 자아를 투영시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며, 이는 곧 돈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목사들에게 자녀를 칭찬하면 묘하게 기분 좋아하는 표정을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신부들 중엔 애연가나 알코올 중독자가 많다고 한다. 예전에 충청도 쪽에서 어두운 업계에 있던 여자 사장님을 알게 됐는데, 그녀의 VIP 리스트에 스님들이 여럿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개신교와 천주교 성직자들은 타락을 금하며 자녀와 술·담배 정도만 최소한으로 허용하는 반면, 스님들은 고기조차 먹지 못하게 하면서 더 큰 타락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업’이라 부른다. 죄이며 반드시 돌아오는 것. 그래서 타락 자체를 엄격히 금하지 않는다.


외주 직원 중 50대 중반의 독실한 기독교인이 있다. 식사 때마다 성스럽게 식전기도를 드리는 모습에서 깊은 주름과 신앙의 무게가 느껴져 존경심이 든다. 그분 말에 따르면 목사의 타락은 70%가 돈 때문이다.


최근에는 수련 목사가 타락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소 인사도 잘 안 하던 인물이었는데, 주말만 일하고 100만 원밖에 못 번다며, 서울에서 살려면 장인 감리목일 때 결혼해 있는 힘껏 돈을 땡겨야 한다고 했다. 대학 시절 50만 원으로 생활하던 나에겐 충격이었다. 100만 원을 어떻게 아껴 쓸지보다 투정을 먼저 부리는 모습에서 ‘타락은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성직자도 인간이다. 최소한의 타락을 통해 숨 쉴 구멍을 만들어 더 나은 설교를 할 수 있다면 그것도 현실일지 모른다.


최근 나 역시 의도된 타락을 감행해보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친구의 권유였다. 돈은 많이 벌면서 연애도 안 하고, 집에 틀어박혀 글만 쓰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두 번째는 글쓰기의 재료를 얻기 위해서였다.


집 근처 마포 번화가의 노래방에 일부러 찾아갔다. 가격을 묻고, 비싼 사람을 불러 제대로 ‘타락’을 경험해보았다. 스킨십은 전혀 없었고, 상대는 연예인처럼 보이는 또래 여성이었다. 입시학원을 운영하다 1억 원의 빚을 지고 그만두었고, 지금은 타락을 통해 빚을 갚고 있다고 했다. 그 순간 그녀의 이야기는 안타까웠고, 대화는 깊었다.


하지만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큰돈을 쓰고 찾아온 공허감만 남았다. 타락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 역시 “이런 데 두 번 다시 오지 말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날의 경험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의미가 있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왜 타락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게도 해주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욕망에 사로잡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원래의 단백하고 심심한 삶으로 돌아왔다. 타락 대신, 철학이나 하며 살기로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차피 터질일은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