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넣는다. 일 때문이다. 하루에 운전을 11시간 하고 미팅을 세 번씩 잡아버릴 때가 있다. 몸은 고단하지만, 그때 이상하게도 집에 돌아오면 신을 영접할 때가 있다. 마치 그들의 통장에 쌓여 있는 ‘원죄’를 내가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제사와도 같다. 나는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은 노동과 빚이라는 고통 속에서 한동안 살아간다.
돈은 사람을 썩게 한다. 때로는 매춘보다 더 심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왜냐하면 1초에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액수가 계좌에 찍히는 순간의 희열은 고작 두세 번뿐이었고, 그 뒤로는 도파민 수용체가 무뎌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이 성적 쾌락에 영혼을 팔 때, 나는 돈의 쾌락조차 감흥 없이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돈은 나를 서서히 마비시켰다.
거래의 자리에서 나는 종종 신과 대속물 사이를 오간다.
“대표님, 100만 원만 깎아주시면,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아멘.”
나는 그 기도를 듣고 100만 원을 깎아준다. 그런데 정작 10만 원을 손해 보면, 그들은 “니가 신이야?”라는 눈빛으로 나를 향해 침을 뱉는다. 그때 나는 묘한 악신의 기운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간을 너무 사랑하신 하나님’을 의심한다.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의심이다.
세상에는 착하게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 나에게 침을 뱉는 이들도 악의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자신의 삶이 너무 팍팍하고, 내 삶이 윤택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가까운 누군가에게 침을 뱉음으로써 잠시나마 균형을 맞추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종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 성당, 절에서 사람들은 기도의 자리에 나와 요구한다. 자녀의 대학, 좋은 배우자, 돈, 건강…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가면, 신에게 받은 것을 잊고 모든 곳에 임재하신 신을 원망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어쩌면 ‘돈’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통장에 쌓여가는 돈들을 바라보며 고민한다. 이 원죄를 어떻게 비워낼 수 있을까. 불태워야 할까, 흘려보내야 할까, 아니면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