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라고 불릴 때

by 삶 집착 번뇌

요즘 블로그에는 점점 구독자층이 두터워지고, 브런치에도 천천히 독자들이 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웬만한 친구들이 내 글을 거의 모두 읽는 듯하다. 그중 몇몇은 댓글이나 메시지에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블로그의 구독자 연령층을 살펴보면, 대체로 40대에서 60대 사이의 여성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그들 삶의 일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어쩐지 묘하게 다가온다.


나는 교회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무신론자가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친다는 건 조금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아직 사회에 물들지 않은 눈빛은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 그 눈들이 세상을 만나고 조금씩 병들어 갈 것을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조용히 저려온다.


가끔은 누군가가 나를 존경심 어린 눈빛으로 “선생님”이라 부른다. 나는 그녀를 선생님이라 부른 적이 없었다. 처음엔 단순히 어린 사람이라고만 여겼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녀에 대한 존경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존경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묘한 안도감과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죄책감을 안긴다. 그 감정은 나를 은근히 움츠러들게 만들곤 한다.


이제 30대 중반이 된 나를 향해, 초등학생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세대가 “선생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비로소 내 글과 삶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느낀다.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아무리 부탁해도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작가’라는 이름이 나를 더 무겁게 짓누르며, 그 호칭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수처럼 사랑을 나누고, 소크라테스처럼 사랑을 깨닫고, 공자처럼 사랑을 지키며, 부처처럼 사랑마저 비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 나를 좋아해주는 이들과 나의 사랑과 철학을 나누는 삶. 그것이 어쩌면 내가 그리는 삶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하나님의 나라가 올지도, 아니면 철학의 나라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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