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부장님이 어디를 가더라도 절하지 말라고 강요하며 교사 기도회는 그렇게 끝났다. 마음 한쪽이 묘하게 걸렸다. 왜 절하지 말라고 하는 걸까. 집에 돌아와 성경적 근거를 찾아보며 ‘정말 절을 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논증과 근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어본 결과, 하나님은 형식보다 마음을 훨씬, 그것도 압도적으로 중요하게 본다. 그리고 어느 자리에서든 모든 사람에 대한 경의와 존중, 애정을 잃지 말라고 가르친다. 결론은 명확했다. 부장님은 나보다 연배는 높지만, 신앙인이라기보다 종교인, 더 정확히 말하면 바리새인이었다.
바리새인은 형식을 마음보다 우선시하며, 결국 성경에 부정적으로 기록된 사람들이다. 요즘 들어 교리와 형식이라는 단어 앞에서 자주 걸음을 멈춘다. 아마 괴리감 때문일 것이다.
나는 불자다. 특히 무신론적 불자다. 스스로를 비우는 수행을 통해 진리에 다가가려 한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CCM을 부르고 ‘아멘’을 외친다. 그것은 하나님이 실재한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목사, 장로, 신자들에 대한 경의와 존중의 표현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아주 낮은 확률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다. 그렇다고 믿음이 있는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또 다른 긴 논증이 필요하므로, 지금은 논지를 벗어나지 않겠다.
우리 부모님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조상님들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뭔데.” 그러면서 제사를 지내고 절을 한다. 이것이 곧 조상 숭배일까. 나는 명절의 제사를 파티라고 생각한다. 제사가 없으면 형제들이 함께 모일 구심점이 사라진다. 나는 부모님이 남기고 가신 제사를 삶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사랑의 흔적으로 본다.
나를 사랑한 부모, 부모를 사랑한 조부모, 조부모를 사랑한 증조부.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이 어째서 나쁜 일일까. 그것은 숭배가 아니라, 관계와 감사의 전승이다.
오늘 교회에서 부장님이 절을 금지했을 때, 나는 오히려 이렇게 느꼈다. “목사가 나에게 경의를 표현할 일이 생기면, 절부터 시키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그를 형식주의의 바리새인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절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존중과 마음의 표현이다. 그것을 무조건 금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교리적 습관에 갇힌 종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