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신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천국으로 가는 통로가 있다면 그곳에는 반드시 문이 있을 것이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 문 너머에는 아무도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그 너머에 사람이 있거나 물건이 있을 때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은 아주 낮은 확률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정의의 문제가 등장한다. 어떤 논증이든 우선 ‘정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신을 실증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칸트는 바로 이 질문을 두고 “신이 있냐, 없냐를 묻는 것 자체가 우문(愚問)”이라 하며,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는 명확한 답을 내렸다. 말 그대로 우문현답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신이 ‘있다’고 단정한다. 물론 그것은 개인의 가치관이므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타인의 태도와 신념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가치관 역시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개신교 사회가 종종 배척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이 있다고 믿는 태도와 그렇지 않은 태도는 삶의 방식에서 차이를 만든다. 통계적으로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다만, 그 사실을 절대적 진리로 강요한다면, 그 논리 역시 그대로 되돌아와 배척을 받게 된다.
결국 “신이 있냐, 없냐”는 논증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대신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관점을 전환하면 명확해진다. 그것이 하나님이냐 아니냐는 인간의 인식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믿는 태도’를 가지고 사는 것 자체는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기보다, 누구든지 자신만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